이번 소설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간결해진 서사와, 기억의 응축된 상징들이다. 심미적 체험을 함축적인 문장으로 아름답게 포착하는 산문적인 특성은 이전의 조경란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지만, 최근 소설들에서는 일상적 소재를 통한 공백과 응축의 미학이 유독 두드러져 보인다. 줄거리로 쉽게 흡수되지 않는 돌발적이고도 우연한 시적 이미지들을 자주 드러냈던 조경란의 소설을 돌이켜보면, 최근 소설들이 일괄되게 유지하고 있는 가지런한 서사의 배열과 공간의 섬세한 조형은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