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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책의 결말을 알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다시 보았을 때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참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가 실재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분류군의 생명체 중 일부가 물속에 살고 있을 뿐, 그들은 각기 다른 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어류는 학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세상에는 물고기가 존재한다. 자연의 실재와 무관하게 인간 세상에서 물고기는 개념적으로 존재한다. 물 속을 헤엄쳐 다니는 바다 생물들을 우리는 물고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단박에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물고기가 존재한다고 하는 자들을 비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실재와 존재는 다르다. 그러나,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인지와 무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믿고 있는 것들, 중시하는 것들, 세상의 진리라고 생각하고 나의 가치관으로 삼은 것들 중 진짜 자연의 이치에 맞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인간은 그것들을 얼마나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것이며, 만일 절대적 자연의 이치라 하더라도 사회와 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통용적 관념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자연 앞에서 인간의 한계는 명확하다. 과학이라는 학문의 시작도 자연을 이해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한 학문일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며 인간은 자연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할테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과 인간의 언어로써의 서술일 뿐, 우리는 절대 그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인간의 입장에서 세상은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혼돈 투성이이고, 우리는 이를 인정해야 한다.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내고 완전한 삶의 의미와 자연의 이치를 찾아낸다는 생각은 너무 오만하다. 내가 믿고 있는 것들, 중시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오류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음’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물고기는 실재하지 않지만,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자들과 존재한다고 믿는 자들을 모두 비난할 수 없다. 만일, 한쪽에 서서 반대편을 맹렬히 비난한다면, 조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되, 나와 타인의 생각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는 유연한 태도, 혼돈과 불완전성에 대한 인정.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마인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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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우리는 너무도 쉽게 과학이 ‘발전한다’는 말을 입에 담고 산다. ‘과학이 발전한다’는 말은 몹시 편리한 말이다. 깊은 고민 없이 단순히 세상에 나온 논문의 수가 늘면 일단 과학이 분명 ‘발전했고’, 세상이 ‘진보했고’, 우리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 하고 낙관하는 건 쉽기 때문이다. ‘과학’이라는 덩어리의 몸집이 커지는 현상을 보고 바로 ‘발전한다’는 말을 연상할 수 있는 사고 과정의 기저에는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고 숭고하다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숨어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과학의 숭고함을 숭배했다.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노벨은 잘못이 없다’, ‘살상에 다이너마이트를 악용한 사람들이 잘못이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숭고한 학문을 공부하는 학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는 과학자에게 너무나 많은 면죄부를 손에 쥐어준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를 ‘악용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다이너마이트라는 기술이 세상에 나온 지금, 우리가 다이너마이트를 쓰지 않는다고 상대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판국에서 쉬이 살인적인 폭발물을 쓰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수많은 아군의 목숨이 손에 달린 상황에서 정말 사용자만이 사악하고 과학은 여전히 무고한 피해자인가? 과학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학문이다. 그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만물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고,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단언하는 일은 결국 알고자 하는 욕망에서 기인한 것이지, 결코 다른 가치와 구분 지을 수 있는 범접 불가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블랙 코미디인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과학이라는 가치가 실은 얼마나 얕고 부질 없었는지 꼬집고 조롱한다. 자연에는 질서가 없을 수도 있고, 과학은 틀렸을 수도 있고, 물고기는 애당초 없었으니까. 우리나라의 그 어떤 집단보다 과학 중심적인 집단인 카이스트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남다른 가치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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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이 책은 과학전문기자인 룰루 밀러가 저자로서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을 추적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수집을 좋아하는 아이였던 데이비드는 물고기를 발견하는 분류학자가 되었고, 은퇴 후에는 열광적인 우생학자로서의 어두운 뒷면을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캐럴 계숙 윤의 책을 인용하여 데이비드의 삶을 부정하듯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설명하고 진리에 다가가서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 위의 점 위의 점’인 인간이 앞으로 수 세기가 지나더라도 진리에 도달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신이 진리의 역할을 도맡아 왔고, 근대에 들어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그 역할을 넘겨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은 어류의 체계가 무너지는 사례만 보아도 여실히 드러난다. 과학은 진리가 아닌 유용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진리는 존재하지만, 인간이 발견한 무언가를 진리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진리의 탈을 쓰고 있는 과학을 진리로 여기는 것을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이다.마지막에 저자가 깨달음을 얻는 장면은 아름다운 단어들로 묘사되었지만 나에게는 불편함을 주었다. 진리를 알기 어렵다고 해서 세상이 완전히 무질서한 것은 아니며, 무질서할 필요도 없다.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말은 왠지 저자의 성적 지향을 포장하는 말처럼 들렸다. 범주는 때로는 진리일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유용성을 준다. 물고기는 진화생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전통적인 기준에서 존재하고, 그 범주는 여전히 유용하다. 지나친 질서를 적용해도 문제가 발생하지만, 모든 혼돈을 용인해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늘 그렇듯 균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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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우리 카이스트 학생들은 명확한 정의와 논쟁을 즐기는 공학도가 많다. 나 역시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물고기’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지 탐구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 책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앞으로 계속 논쟁을 즐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굉장히 불완전한 것이라는 말은, 이전에 과학의 ‘반증 가능성’을 배웠던 순간을 상기시킨다. 반증 과정을 통해 허구가 된 지식이 절대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듯이, 이 모든 것이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는 것을 다시금 배웠다. 초등학교 때에 정수를 배우고, 중학교에서 음수를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는 루트 안에 음수를 넣고 대학교에 와서는 그 너머의 수를 배우기까지, 우리는 ‘루트 안은 음수가 될 수 없다.’와 같은 규칙을 계속해서 세우고 부셔나간다. 새로운 지식들은 기존의 규칙들을 부정하는 것 같지만, 실은 부정보다는 확장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런 교과 과정을 밟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공감할 주제를 다루면서도, 생명과학적인 지식들이다보니 더욱 새롭고 흥미롭게 읽었다. 찰스 다윈,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와 같은 인물들의 발견과 논의가 어떻게 기존의 상식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갔는지, 물고기라는 개념이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확장되고 때로는 반박되었는지를 읽어보며, 혹시나 ‘왜 루트 안에 음수가 들어갈 수 있냐’고 화를 냈던, ‘지금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변화할 수 있는 가설에 불과한 것인지’ 무력감을 느꼈던 사람이 있다면, 물고기라는 새로운 주제를 통해서 그와 관련된 생각을 더 깊이 해볼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자연과 과학과 인간의 관계에서 그 무엇도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적 사실과 지식의 발전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고, 인간 존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을 통해 끝없이 도전하고 그 복잡함을 탐구한다. 때로는 실수나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 체계가 얼마나 상대적이고, 다층적이며, 결국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인지 깨달은 만큼, 언제고 문제를 제기하고 세상을 알아가기 위해서 더 열심히 즐겁게 지식을 쌓아야 겠다는 다짐이 든다. 물론 자연을 향한 도전 앞에서는 늘 겸허해야겠다는 생각도 빼놓을 수 없었다. 징크 사람들과 같이 읽길 잘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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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밀러, 룰루
책의 결말을 알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다시 보았을 때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참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가 실재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분류군의 생명체 중 일부가 물속에 살고 있을 뿐, 그들은 각기 다른 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어류는 학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세상에는 물고기가 존재한다. 자연의 실재와 무관하게 인간 세상에서 물고기는 개념적으로 존재한다. 물 속을 헤엄쳐 다니는 바다 생물들을 우리는 물고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단박에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물고기가 존재한다고 하는 자들을 비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실재와 존재는 다르다. 그러나,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인지와 무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믿고 있는 것들, 중시하는 것들, 세상의 진리라고 생각하고 나의 가치관으로 삼은 것들 중 진짜 자연의 이치에 맞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인간은 그것들을 얼마나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것이며, 만일 절대적 자연의 이치라 하더라도 사회와 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통용적 관념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자연 앞에서 인간의 한계는 명확하다. 과학이라는 학문의 시작도 자연을 이해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한 학문일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며 인간은 자연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할테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과 인간의 언어로써의 서술일 뿐, 우리는 절대 그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인간의 입장에서 세상은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혼돈 투성이이고, 우리는 이를 인정해야 한다.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내고 완전한 삶의 의미와 자연의 이치를 찾아낸다는 생각은 너무 오만하다. 내가 믿고 있는 것들, 중시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오류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음’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물고기는 실재하지 않지만,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자들과 존재한다고 믿는 자들을 모두 비난할 수 없다. 만일, 한쪽에 서서 반대편을 맹렬히 비난한다면, 조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에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너무나도 이상적인 탓에 자기모순을 일으키고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개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되, 나와 타인의 생각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는 유연한 태도, 혼돈과 불완전성에 대한 인정.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마인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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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소설을 읽는 줄 알고 있었다. 누구나 알법한 명문대학의 초대 학장이 이러한 일들을 저질렀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어떻게 난관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세우기 위해 즉, 어류를 포획하고 분류 하였는지 탐구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다. 초반부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포기할줄 모르는 집념, 굴하지 않는 끊기 등을 강조하며 어류학자로서 그가 행한 업적들을 위주로 예찬한다. 하지만 중/후반부에서는 그가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행한 과정에서 발생한 비윤리적 일들, 은퇴 후에는 우생학을 보급하는 등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는 대외적으로 여전히 훌륭한 어류학자로 남아있었지만 추후 어류라는 엄밀한 분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져 즉,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일종의 인과응보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 결국 저자는 잘못된 신념을 통해 발생한 비윤리적 사건들과 존재하지도 않는 생물 간의 우위를 주장하며 불합리한 우생학을 전파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히려 저자는 모든 생물들은 저마다의 작고 소중한 특징과 개성이 있고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잘못된 신념이나 고정관념에 휩싸여 세상에 대한 편향된 사고방식을 탈피하고 있는 그대로의 불확실성을 받아드리라고 말한다. 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범주와 분류라는 구분을 거부하고 저마다 개별적인 시각으로 볼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먼저, 저자는 생물마다의 개성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관점 자체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본 책에서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통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잘못된 신념을 가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사실 저자도 본인의 관점을 고수하지 못한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인다. 진정으로 우위가 없다고 주장하려면 본인의 관점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관점에 비해 나을 것이 없으므로 비판하기는 힘들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세상의 모든 불확실성을 직시한다면 과연 데이비드 스타 조던 처럼 혼돈에 저항하고 어떠한 역경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자신의 목표를 수행할 수 있을까? “자기기만”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는 무기력한 존재일 것이다. 그가 자연에 저항하며 전세계를 누비며 수집하고 분류한 다양한 수생생물들을 수집하고 분류한 그의 업적은 결코 괄시할 수 없다. 또, 저자는 분류, 범주라는 벽을 허물고 개별적인 시각으로 불확실성을 인지하며 세상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범주 또는 분류는 인간의 복잡한 세상을 편리하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고방식으로 일종의 추상화, 단순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물에서 살면 어류다”와 같이 편협하고 잘못된 편견이 발생할 수 있지만 덕분에 우리는 수생생물들은 간편하게 통칭할 수 있는 단어를 얻을 수 있고 비록 분류학적으로는 잘 못 되었더라도 의사소통이나 의미전달 방식에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물고기라는 범주 또는 분류라는 직관을 인간이 획득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물고기를 부를 때마다 각각의 생물 명을 알고 있다던가 복잡하고 다른 특성을 기반으로 설명을 해야할 것이다. 일례로 우리는 빨간색이 물질의 1차 특성이 아니라 빛의 파장 중 750nm 부근의 파장만 반사하고 그 외는 흡수하는 물질이 단지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는 대신 세계를 이해하고 편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진실에서 멀어지거나 발생하는 편견이나 정보손실은 필연적이다. 다만, 그러한 사고방식을 근거로 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거나 해를 가하는 것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 그러한 직관이나 분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물고기는 앞으로도 늘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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