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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탁스함에 그와 같은 이름을 갖는 약사가 있다면 그것은 우연일 것이다.’하지만 책이 끝날 때까지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장난인지 거짓말인지 환상인지 책 속의 현실인지 알기 어렵다.탁스함의 약사도 그랬을 것 같다.이 아저씨는 엄청난 후각을 가지고 독특한 버섯을 찾아 먹는 취미의 소유자인 동시에 집나간 아들과 독립해가는 딸, 말도 잘 섞지 않고 마주치지도 않는 아내를 두었다.또다른 취미는 서사시 읽기이다.탁스함이라는 낯선 지명과 버섯 캐기와 서사시라는 취미를 조금 비틀어 생각해보면, 포천쯤 사는 무협지 좋아하는 약사 아저씨처럼 보이기도 한다.완전히 혼자 남겨진 그는 서사시를 읽다 집을 나서 직접 서사시를 겪게 된다.풀숲에서 후려 맞고 말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어느 새벽 미망인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수상하지만 신비롭지는 않은 두명의 동행인과 그는 산타페에 도착해서 아들 딸의 사랑도 목격하고 마을 소일거리도 하면서 낡은 새 삶을 찾는다.약사는 여전히 말을 못하고, 되찾고 싶어하지도 않는다.이끌리듯이 떠난 스텝 지역에서의 여정은 빨리 감기처럼 지나간다.이상한 장면들과 온갖 내음이 스쳐간다.그리고 그는 메마른 들에서 마침내 그가 좇던 미망인의 목소리를 듣는다.목소리는 그의 실어 상태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정말?알 수 없지만, 그 대목 이후에 약사는 스텝을 마저 건너고 달음박질하여 문명으로 돌아온다.탁스함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집에 돌아와 서사시를 다시 집어들고, 말을 되찾는다.이야기는 백일몽 같다.어쩌면 약사는 탁스함을 떠난 적도 없고, 이 모든 이야기는 철저히 혼자 남겨진 어느 주말에 목적지 없이 산책하고 버스에 올라 하염없이 졸면서 그려낸 꿈일지도 모른다.아니면 혼자 산타페 여행을 다녀오며 자투리 시간마다 지어낸 상상일 수도 있다.말 할 사람도 할 말도 없어 다문 입을 실어 상태라고 스스로에게 얼버무렸는지도 모른다.하지만 허구인지 변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두들겨 맞는 것은 나쁜가?실어는 부자유 혹은 기만적 자유인가?영속적인 것은 없다. 이야기는 죽음에서 출발해서 수용과 해소로 잦아든다.여정 속에서 약사는 격렬한 충격으로 시작해서 점점 은은한 내음의 형태로 자유와 죽음, 이별을 받아들인다.후일담에서 그는 침이 많이 튀길 것으로 예상되는 흥분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떠벌인다.돌아온 그의 삶이 또렷하게 새롭지는 않지만, 촛불처럼 명료한 생명력을 품고 있음이 느껴진다.죽음의 사자처럼 보이는 까마귀의 역할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삶과 죽음은 대비되지 않고 실어는 언어를 배척하지 않는다.맞고 듣고 냄새맡으면서 되찾은 그 생명을, 그리고 직접 캔 버섯 요리를 언젠가 우리도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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