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 Vol. 9 [2023]
MIT 테크놀로지 리뷰 편집팀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미래 기술의 트렌드를 분석하는 과학기술 분석 잡지이다. 미국에서 권위 있는 잡지 중 하나이며, 기술을 선도하는 나라가 세계 경제를 선도하게 된 현대 사회에서 테크놀로지 리뷰는 더 중요해졌을 것이다. Volume 9를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선정한 2023년 10대 미래 기술이 있는데[1] 이를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에서 제시한 GNR(Genome, Nano, Robot and AI)로 구분해 보자.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 Other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CRISPR 기술 - G이미지를 생성하는 AI - R주문형 장기이식 - G원격진료를 통한 임신중절 – Other개방형 표준의 반도체 칩 설계 - N고대 유전자의 분석 - G배터리 재활용 - N자동차 산업의 주류가 된 전기차 - Other군사용 드론의 대중화 - R<특이점이 온다>에서 커즈와일은 GNR을 21세기를 이끌 핵심 기술로 선정했는데, 앞의 예시에서 보이듯 G, N, R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10개 중 7개가 GNR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커즈와일의 예측은 어느 정도 유효하다. 그럼에도 Tesla의 전기차와 같이 예상치 못한 기술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며, 원격진료를 통한 임신중절의 경우도, 2022년 6월 24일 지난 6월 24일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낙태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면서 낙태 허용 여부가 개별 주에게 맡겨진 사태가[2] 큰 영향을 미친 기술이다. 이렇듯 핵심 기술이 될지 여부는 사회 문화적 상황과 사회인들의 수요 변화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큰 흐름을 예견할 수는 있어도 구체적인 사례를 예견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이 관점을 현재의 관점부터 장기적인 관점까지 다단계로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현재를 살핌으로써 장기 플랜을 꾸준히 조정하고 구체화해야 성공적으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교적 단기적인 관점을 반영하는 MIT Technology Review가 가치를 지닌다. MIT Technology Review Volume 9. Jul/Aug 2023은 Review답게 아직 개발되지 않은 미래의 기술을 예측하기보다는 현재 이미 개발된 기술 위주로 논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AI와 교육이며 전체 페이지의 약 6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양자컴퓨터, 에너지, 기후 변화, 생명 공학 등이 각각 많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잡지는 기본적으로 기술에 대한 낙관론을 옹호하면서 잘못 사용할 경우 큰 부작용이 초래될 것이라는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외에도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고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쟁점도 제시한다. 이는 AI와 교육의 잠재적 가능성, AI와 법조계의 관계, 태양지구공학의 필요성과 문제 등에서 잘 드러난다. 이 잡지를 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대부분이 미국 얘기라는 것이다. 덴마크, 독일, 중국의 기술 예시는 약간 나오고, 한국은 DeepL이 네이버 파파고보다 좋다는 등의 식으로 매우 간략하게 등장한다. 물론, 미국이 첨단과학의 선두 주자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기술 리뷰 책이 미국 위주의 사례를 다룸으로써 미국의 위상이 공고해지는 순환 고리가 약하게나마 형성되지 않은가 의문을 가져본다. 특히, 한국의 대학들, 포항공대, KAIST, 서울대학교 등은 왜 Technology Review를 하지 않는 것인가. 대학이 법적 문제나 잡지를 내는 것이 수익성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가 걱정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미 더 좋은 대학에서 해주고 있으니, 본인들은 할 필요가 없다는 둥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덴마크에서는 앱을 통해 학생들의 기분을 체크한다는 등 교육계에서 현대 기술을 활용한 참신한 접근이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 특히, 교육계에서는 과거에 인터넷 강의를, Zoom 회의를 도입한 것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KAIST나 서울대학교라고 교육 방식에 혁신이 있었는가? 18년도 입학 이후로 교육 내용이 다소 바뀌긴 했어도 교육 방식에 최신 기술이 도입된 것 같지는 않다. 굳이 있다면 Zoom 회의를 통한 온라인 강의의 수용, Classum이나 Piazza 정도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활용, 이메일 시스템 개선 정도인 듯싶다. 당장 대한민국 첨단 과학 기술의 아이콘 중 하나인 KAIST부터 교육 방식의 기술적 혁신에 보수적인데 어떻게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창의적이고 세계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인재들이 양성되나 싶다. 그런 인재가 나오기는 하지만, 차라리 주변 친구들의 영향이 컸겠지, 도전 정신이나 창의성이 KAIST의 교육적 시스템 덕분에 길러졌을 거라고 해석되지는 않는다. 결국 한국 사회가 기술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지 않나 의심하게 된다. 과거 2020년도 3월 4일, 타다 금지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사례가 떠오른다. 원래 법적 규제를 잘 회피하여 운영되던 서비스였고, 무죄 판결까지 받았으나 법 자체를 개정해 타다의 핵심 서비스를 강제로 종료시킨 것이다. 한국도 잘 검색해 보면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최신 기술을 도입하는 등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10월 25일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의 세미나에서 소개된, IT기술과 서비스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소셜벤처 기업인 식스티헤르츠도 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기술에 대한 성향은 전혀 균일하지 않다. 그러나 그 성향을 몇 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음의 그림은 마케팅 원론에 등장하는 캐즘 이론을 표현한 것으로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는 주기를 4단계로 구분한다.[3] 한국도 마찬가지로 얼리 어답터, 혁신가들이 있고, 그 반대편에 Late Majority와 Laggards들이 있다. 위 그림은 아마도 미국이나 서양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앞의 국내 사례들을 보면, 한국이 과연 위의 그림처럼 대칭적인 그림일까? 이러한 의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실증적 연구가 바탕이 돼야겠지만 오른쪽에 더 치우쳐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혹은 각 단계의 사람들이 가지는 사회적 힘을 보자. 한국은 Innovator가 더 힘을 가지는가, Laggards가 더 힘을 가지는가? 여기서 힘이라는 것을 정치권에 대한 호소력 정도로 한정한다면 Laggards가 더 큰 힘을 가질 때가 많은 듯싶다. 혹은 Laggards는 사회적 약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경우가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한국 환경에서 테슬라와 같은 인물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테슬라의 말년이 아니라 전성기 때를 기준으로 테슬라가 교류의 가능성을 보여줬어도 한국이 이미 직류로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면 기존 세력에 의해 테슬라의 시스템을 법적으로 제한하지 않았을까? 한국 사회에서 Laggards가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도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이를 온전하게 분석하지 않고 섣불리 옳고 그름을 판단해선 안 된다. 하지만 Innovator와 Laggards, Late Majority 사이의 갈등이 쉽게 발생하는 사회라면, 이 문제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시발점으로서 왜 Laggards는 Laggards가 되었는지, 그들에게 혁신이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사회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출처[1]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선정한 2023년 10대 미래 기술 - MIT 테크놀로지 리뷰 | MIT Techonology Review Korea (technologyreview.kr)[2] 서윤, 윤이정, 이진서, 김혜원, 기본권이 하루아침에 부정된 나라, 2022.10.31 18:20, 대학신문, https://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220[3] Grandmar, 세상을 읽는 기본 상식, 캐즘 이론, 2021.09.28, brunch, https://brunch.co.kr/@grandmer/273
테크놀로지의 정치 : 유전자 조작에서 디지털 프라이버시까지
재서노프, 실라
기술의 정치. 이 도발적인 제목은 처음부터 꽤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미 <기계비평들>에서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이후로 기술과 정치를 엮으려는 시도 자체가 다소 불편하게 보였는데, 이제는 아예 제목에 정치가 들어간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배신도 당하지 않는 법. 기대를 최대한 접어두고 책장을 펼쳤다. 그리고 책이 끝나갈 즈음 이 모든 것이 기우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과는 정반대로 저자는 매우 엄밀하고 조심스럽게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을 분석했다. 매 분석마다 각종 자료와 기사, 연구결과가 쏟아지는데도 저자는 딱히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지도 않아,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오히려 강한 한 마디가 필요할 때마저도 건조한 전개를 고집하여 답답한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저자는 신중했다. <기계비평들>이 성급한 일반화와 급진적 주장으로 논점을 잃어버린 글의 표본이었다면, 이 책은 그것의 안티테제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 책과 <기계비평들> 간의 비교를 직접적으로 가능하게 한 부분은 산업재해를 다룬 부분이었다. 저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하기 위한 3가지의 요소로서 전문가 예측의 한계, 제한적인 보상, 그리고 구조적 불평등을 꼽았다. 즉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사고 발생 가능성을 몰랐거나 과소평가했고, 사고 피해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해당 피해자가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힘든 상황이 바로 산업재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단순히 사고 피해자를 선으로, 사용자 측을 악으로 매도했던 <기계비평들>에서의 분석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건설적이다. 무의미한 탓 돌리기가 아닌 실증적 분석을 바탕으로 산업재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명확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저자가 인용한 인도 보팔의 유니언카바이드 화학공장 가스누출 사고의 경우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의 피해가 압도적이었고, 이에 프레이밍이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객관적으로 분석하려 한 저자의 시도는 이 책의 신뢰도를 한층 높여준다. 책의 다음 초점은 범람하는 디지털 기술 속 점점 취약해지는 보안 문제로 향한다. 마침 이 주제는 최근에 다녀왔던 WESF 라운드테이블에서 논의되었던 것이어서 해당 포럼의 내용과 비교분석이 가능했다. 저자는 자유로움이라는 가면을 쓴 인터넷 공간의 통제성을 지적하고, 또 AI 기반 알고리즘을 앞세운 빅테크 기업들의 무분별한 잠재적 소비자 개인정보 수집을 비판한다. 또 잊힐 권리로 대표되는 넷상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에 대해서도 논한다. 한편 포럼에서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중장기적 위협과, 해킹이 발생하는 메커니즘 및 이를 방지할 방안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 두 가지 논점은 상보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데, 책에서 제시된 문제가 포럼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다루어져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이 여럿 제시된 것을 볼 수 있다. 포럼 참석자로서 해당 주제가 다루어진 근원적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던 점이 이 챕터의 가장 강력한 특성으로 다가온다. 이밖의 여러 가지 최신기술들이 가진 현시적·잠재적 위험성과 오남용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딜레마로 이어진다. 바로 과학기술의 자유로운 탐구라는 관점과 기술 오남용을 막기 위한 지식 통제라는 관점 간의 대립이다. 전자는 자유지상주의와 기술중립주의에 입각하여 기술 개발자와 사용자는 철저히 별개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데에 비해, 후자는 개발자의 행동이 사용자의 양상에 실제적 변화를 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필수의약품의 개발 및 관리의 측면에서 제약산업이 가지는 힘을 숙고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지만, 그럼에도 두 가지 관점 중 명확하게 한 가지를 선택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둘 모두 기술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관점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의거한다고 볼 수 있다. 양립할 수 없는 두 입장의 양립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지, 올바른 협상점은 어디인지, 두 관점의 불편하지 않은 동거를 지금부터 톺아볼 것이다. 위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이유부터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술의 접근성에 관한 문제로, 해당 딜레마가 발생하는 기술들을 면밀히 보면 대부분 대중들이 정확한 원리와 사용 양상을 알기 힘든, 베일에 싸인 기술들이다. 유전자 가위, 생성형 인공지능, 임상시험 전 신약은 모두 소수의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면 엄밀한 원리와 기작, 효과와 부작용을 정확히 알기 힘든 것들이다. 저자 역시 이 문제에 공감하며 ‘기술 민주주의'라는 카드를 꺼내드는데, 기술의 개발과 이용을 정하는 권리를 자본과 산업, 정치인이 아닌 실질적 소비자에게 넘기자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직접민주주의의 사례를 보면 이 역시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는 방식으로밖에 볼 수 없다. 심지어 기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결정권이 주어질 경우 발생할 결과는 가히 재앙적이다. 재앙이라는 과격한 단어의 선택에 대해서는 이 문제가 먼저 제기되었던 사법의 사례로 설명될 수 있다. 흉악한 범죄자가 강력범죄를 저질렀을 때 대중들은 피의자를 향한 엄벌을 촉구하고, 기대보다 낮은 형이 선고되었을 때 각종 방법을 동원하여 반대 의사를 표명하곧 한다. 그러나 직접 재판에 모두 참관한 청중은 오히려 판사의 형이 지나치게 강력하다는 판단을 내리곤 한다. 이 모순은 국민 배심원 제도를 통해 그 원인이 밝혀졌는데, 재판을 거의 참관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모든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의 경우 형량을 더 낮게 주려는 경향은 보인다는 사실이다. 즉 정확한 맥락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은 상당히 부정확하고 감정 기반적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기술 민주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생성형 AI의 실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AI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지 않을 확률이 높다. 또한 GMO의 원리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GMO 상품에 대한 의견을 더 합리적으로 제시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가 내녺은 해답은 황당하게도 ‘겸허의 기술'이라는 낙관론이었다. 좋은 논제를 좋은 논의로 이어오던 흐름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지나치게 유아적이고 황당한 결론이었다. 그야말로 용두사미라는 표현이 더할 나위 없이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공허의 낙관론을 대신할 실제적인 해결책은 무엇보다 신기술의 원리와 사용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도 각종 유튜버를 비롯한 인플루언서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지식이 전달되고는 있지만, 쏟아져나오는 신기술을 모두 다루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대중들이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대한 최신 기술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받아볼 수 있는 매체의 증가가 필수적이다. 일례로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한 실시간 라디오와 콘서트 등 다양한 수단의 창의적인 활용을 통해 접근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대 형성이 잘 되어 있는 자율주행의 경우 실제로 법적 정비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길을 잃은 내비게이션’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현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여러 가지 최신 기술의 잠재적 위험성을 검토하며, 이에 대한 여러 관점을 복합적으로 검토한다. 이러한 중립적인 분석은 독자에게 하여금 스스로의 관점을 확립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탓에 저자 본인의 주장은 사라진 채 ‘겸허의 기술'이라는 공허한 낙관만 남아있게 되었다. 독자의 사고를 위한 길을 찾아주다 스스로가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차라리 이전까지의 논의처럼 결론 부분에서도 저자 본인의 주장을 드러내지 않고,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독자가 스스로 선택하며 책을 덮은 후에도 이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열린 결말이 훨씬 좋은 마무리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여러모로 <20세기 기술의 문화사>와 비교되는 결론이기도 했다. 다만 이 결론 부분을 제외하고 본다면 기술의 건전한 사용에 대해 생각하기에 꽤 괜찮은 저서라 할 수 있고, 이 책이 신기술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테크놀로지의 정치 : 유전자 조작에서 디지털 프라이버시까지
재서노프, 실라
<테크놀로지의 정치> 기술비관론 중에서도 그 흐름에서의 규칙을 찾고 비판하는 방식으로 매우 거시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거시적인 관점의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다양한 사례를 통해 기술 발전에 대한 현대 사회, 특히 미국의 태도가 가진 문제점(기술결정론, 기술관료제, 의도하지 결과 등)들을 비판하며 기술 발전에 있어서 대중의 영향력이 확대돼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1장은 기술에 대한 3가지 통념, 인류의 태도에 무관하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류가 필연적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는 기술결정론, 기술에 대한 수많은 결정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주도해야 한다는 기술관료제, 안 좋은 결과는 언제나 의도치 않으며 예상 불가능하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3가지 관념과 이 관념들에 따른 책임 소재의 불분명함을 논하며, 기술이 인류 사회에 미친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기술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위 3가지 관념이 해결돼야 함을 역설한다. 2장 ‘위험과 책임’과 3장 ‘재난의 윤리학’에서는 기술혁신이 수반하는 각종 위험과 산업재해의 사례를 살피면서 그것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보여준다. 가령, 1960년부터 염화불화탄소가 오존층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고, 국제 공동체는 1989년에야 몬트리올의정서를 발표해 염화불화탄소의 생산을 중단했다. 이는 과학기술에 대한 위험분석의 특징을 보여준다. 위험의 예측은 부정확하고 너무 늦게 이루어지며, 조기경보는 무시되고 관리의 책임은 산만하게 분산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1984년 인도 보팔의 유니언카바이드 화학공장에서 일어난 가스누출참사는 위험의 분배가 불평등하며, 기술재난이 일어날 경우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기술 발전의 위험 관리에는 위험 예측의 한계, 제한적인 보상,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3가지 문제가 있으며, 기술의 위험을 줄이고 기술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고려를 넘어 지구 환경과 사회정의까지 고려하는 윤리적인 거버넌스가 필요하다.4장 ‘자연을 다시 만들다’와 5장 ‘인간에 대한 조작’에서는 유전자 조작, 생의료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해 윤리적, 도덕적 문제들을 논한다. GMO는 식량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르나, 그와 동시에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에 초래할 결과도 미지수며, 그 위험은 여전히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대리모와 친부모의 권리를 둘러싼 문제들, 유전자 조작에 의한 맞춤아기의 가능성 등 인간의 생명현상을 조작하는 문제는 정치, 윤리, 법률의 차원에서 더 복잡한 이슈를 제기한다. 따라서 생명 관련 기술을 어떻게 규제할지는 과학자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 6장 ‘정보의 거친 첨단’에서는 디지털혁명 속에서 프라이버시와 사상의 자유에 드리워진 위기의 그림자를 묘사한다. 2013년 스노든은 위키리크스를 통해 미 국가안보국이 인터넷에서 방대한 양의 정보를 매일 수집하고 있다는 문서를 공개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의 전자통신은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엄청난 통제 속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정부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들도 소비자들을 잠재적 공략 대상으로 보고 동의 절차 없이 수행한 기본 실험을 소개하며 이를 방지하고 검토할 윤리적 장치가 없다고 비판한다. 디지털 정보는 현실의 물리적 정보랑 다른 특징을 가지며, 헌법과 같은 기존의 보호장치들이 온라인상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새로운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7장 ‘누구의 지식이고, 누구의 재산인가?’에서는 특허 등 지식재산권 문제로 눈을 돌린다. 헬라 세포와 같이 인체 유래 유전자로 실험을 할 때 그 결과물에 대한 권리는 누가 갖는가? 저자는 세포주를 제공했음에도 어떠한 대가도 받지 못했던 랙스의 사례, 유전자를 둘러싼 각종 특허 소송의 사례를 통해 자유로운 과학 탐구 및 도덕적 가치와 독점권을 통한 과학 탐구 동기 부여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규칙들을 검토한다. 필수의약품이나 생명체에 대한 특허는 독점권을 함부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것의 대표적 예시이다. 8장 ‘미래를 되찾다’와 9장 ‘사람을 위한 발명’에서는 과학기술의 통제와 거버넌스의 문제를 탐구한다. 저자는 그간 기술관료제에 따라 과학기술의 힘을 관리하는 데 참여한 이들이 주로 기술관료들이나 과학자, 금융가들이었음을 지적한다. 반면 대중들은 최종 소비자로만 여겨질 뿐, 기술진보의 방향에 대해 전혀 발언권을 갖지 못했다. 즉, 과학기술이 지닌 영향력에 비해 민주주의가 결핍되어 있었다. 저자는 기술 통치라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힘을 자본과 산업, 그리고 대의제의 정치적 대리인들에게서 환수해 새로운 윤리적·정치적 선택을 가능케 할 의지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까지의 기술에 대한 논의들은 대체로 하나의 영역에 국한되어 그 영역에서 어떤 잠재적 혜택과 부작용이 있을 것인지와 이들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리고 부작용을 어떻게 규제하고 해결해 나갈지를 다뤘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퍼가 온다>[1]나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2]에서도 대중의 역할은 소개되지만 여전히 기술 개발에 대한 주 결정론자는 국회의원이나 학자들, 혹은 사업가들이어야 한다는 것에는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으며, 대중에 대한 이해와 정치적 관심을 촉구하고는 있으나 과연 이를 위해 각 개인을 위한 정치 문화, 근로 환경 등을 얼마나 바꿔주고 배려해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하지 않고 있다. 이런 기술에 대한 세계적 추이는 <20세기 기술문화사>[3]와 <거의 모든 IT의 역사>[4]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우주 개발이나 원자력 산업은 국가 기밀이었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대중은 그저 결과물만 보고 희망과 회의를 왔다갔다했으며 여전히 과정에 대해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등의 기술 개발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는 소외 계층에게 기술 개발의 부작용이 집중될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저자의 말과 같이 현대 과학은 그다지 민주주의화가 되어 있지 않으며, 과학자 집단은 대중과 분리되어, 대중은 소비자로서 할 수 있는 불매 운동이나 시위 등을 제외하면 과학의 발전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과학기술 연구는 중앙집권적 혹은 사업적인 성격을 띄었다. 그리고 개인이 아닌, 정부나 큰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는 과학기술 발전은 정치적으로 편향되거나, 지나치게 이윤이 추구된 나머지 과학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 집단이 형성되고 그 소외 집단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 그리고 이는 도덕적 측면은 물론, 기술 발전의 위험 관리 측면에서도 막을 수 있었을 비극을 막지 못하게 되는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비록 저자는 미국의 상황을 위주로 평가했지만, 저자의 주장은 한국에도 적용된다. e-나라지표-국내총 연구개발비[5] 및 전기신문-국내 R&D 1000대 기업, R&D투자액 60조원 돌파에 따르면[6], 2020년 국내 R&D 비용 중 정부의 투자 비중은 23.2%, 국내 1000대 기업의 투자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나머지 17% 정도가 정부도, 1000대 기업도 아닌 비율인데, 이는 개인으로부터의 투자 비중이 17% 이하임을 의미한다. 물론, 개인의 투자 비중이 적다는 것이 과학 기술의 발전의 방향성을 결정함에 있어서 대중의 소외를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윤리심의위원회에 개인이 참여하는 방식으로도 과학의 민주주의 수준은 증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의위원회나 기술 평가에 대한 증거력으로서 대중의 영향력을 높이는 등 저자가 구체적으로 제안한 방식만으로는, 대중들은 여전히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이 아닌, 제시된 방향성에 대해 규제를 가하는 수동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과학 발전 방향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한 가지 방식은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과학기술 연구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즘에서의 주장과 같이 과거 과학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여성들에 대한 과학적 소외를 해소하기 위해 여성들의 입장을 더 잘 고려할 수 있는 여성 과학자들이 배출돼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하는 것이다. 과학기술과크라우드 펀딩-사람과기술을 이어주는 투자-에 따르면[7], 과학기술 크라우드 펀딩이 대중과 과학 사이의 괴리를 해소할 수 있는 주요 통로로서의 역할이 기대된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의 저자도 성소수자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한 사례가 있다. 지금까지는 정부와 기업이 과학기술자를 고용하여 과학의 발전을 주도해왔다. 이제는 대중이 과학기술자를 고용해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야 할 때가 아닌지, 어떻게 하면 넘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Reference)[1] 제니퍼 다우드나,새뮤얼 스턴버그, <크리스퍼가 온다>, 2018년, 프시케의숲[2] 빌 게이츠,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2021년, 김영사[3] 김명진, <20세기 기술의 문화사>, 2018년, 궁리[4] 정지훈, <거의 모든 IT의 역사 (1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2020년, 메디치미디어[5]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325[6] 송세준, 국내 R&D 1000대 기업, R&D투자액 60조원 돌파, 2022.11.23 17:31, 전기신문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1734[7] 김홍범, 2012년, “과학기술과 크라우드 펀딩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투자-“, KISTEP, https://www.kistep.re.kr/flexer/view.jsp?FileDir=/board/0031&SystemFileName=1390806889496.pdf&ftype=pdf&FileName=1390806889496.pdf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 우리가 가진 솔루션과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
게이츠, 빌
빌 게이츠는 무엇이 달랐는가 환경보호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전문가부터 일반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논쟁에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지구 환경의 극적인 개선은 요원하다. 환경오염과 기후재앙은 <특이점이 온다>과 같은 책이 담는 기술낙관론의 가장 현실적인 걸림돌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전 세계적 난제에, 컴퓨터에 인생을 바친 억만장자가 접근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평생을 바쳤으며 환경과 관련해서는 문외한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업가인 빌 게이츠가 환경에 관한 책 한 권을 쓴 것은 의외였다. 어렸을 때부터 환경을 살린다는 명목 아래 쓰레기 분리수거, 에너지 절약 등을 골자로 한 수많은 캠페인을 보았기 때문에 이 책도 그런 유형의 책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책은 무언가 달랐다. 이 책 서문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숫자는 바로 500억이다. 톤 단위의 이 숫자는 연간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총량이다. 그리고 목차에서는 각 챕터마다 27퍼센트, 31퍼센트, 19퍼센트, 16퍼센트, 7퍼센트의 숫자를 다룬다. 이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500억 톤 중 각각 전기생산(27%), 제조(31%), 사육과 재배(19%), 교통과 운송(16%), 냉방과 난방(7%)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개인적으로 제조, 그리고 사육 및 재배의 비율이 예상보다 높았고, 교통과 운송, 그리고 냉난방의 비율이 예상보다 낮다고 느꼈다. 빌 게이츠의 접근방식은 큰 기업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이끌었던 사람다운 접근방식이다. 마치 수백 조원 단위의 돈을 다루는 정부 예산안과 관련된 신문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거시적인 접근방식은 지구를 위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레토릭과는 차별화되었다. 유독 환경을 주제로 한 담론에서는 정확한 수치의 언급을 피하고 '조금이나마' 지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최근 가장 뜨거운 주제는 플라스틱 빨대의 사용 규제 철회이다. 플라스틱 빨대의 대체제로 종이빨대를 사용하는 것이 정말로 환경에 도움이 되는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해양환경정보포털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집계된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 중 낚싯줄, 그물, 부표를 비롯한 어업 관련 플라스틱이 전체의 40.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고, 생활 플라스틱의 비중은 적었다. 일회용 접시, 숟가락, 빨대를 모두 합쳐 전체의 1.7%였다. 통계청은 2020년 국내 어업 종사자가 9만 7천 명이라고 발표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해양 쓰레기 중 빨대와 어업 쓰레기가 차지하는 비중의 일 인당의 지분은 큰 차이가 나는 셈이다. 하지만 스타벅스, 맥도날드를 비롯한 비롯한 적지 않은 기업들이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며 마케팅을 한다. 그 외에도 우리는 환경을 생각하는 도덕적인 기업이라는 레토릭은 많은 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실 이 책 서문보다 먼저 등장하는 문구는 "이 책의 본문은 환경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재생지 그린Light에 콩기름 잉크를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이다. 이 문구는 빌 게이츠가 적지 않았고 한국 출판사가 적었을 것이다. 많은 레토릭에 숫자가 등장하더라도 쉽게 체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떤 제품을 구매하면 몇 (킬로)그램의 탄소를 배출했다고 알리는 탄소발자국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색무취의 기체 이산화탄소의 양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일반인은 물론 섭씨 0도, 1기압에서 기체 1몰의 부피가 22.4L를 차지하니 이산화탄소 22.4L가 44g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화학과 학생조차도 쉽게 체감하기 어렵다. 자가용 대신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한다면 소나무 12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계산이 그나마 체감하기 쉬운 설명이다. 그러나 이 설명 역시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책에서 빌 게이츠는 이러한 방식의 설명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나무를 심어서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하려면 세계 육지의 절반이 필요하다는 빌 게이츠의 계산이 내 취향에 더 맞았다. 빌 게이츠가 또 하나 달랐던 것은 환경보호를 위한 방법론을 개인의 불편과 기업의 손실 감수로만 해결하지 않으려고 한 점이다.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언뜻 들었을 때 반소비, 반기업적인 주장을 설파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는 것을 알리면서도 도시의 성장은 좋은 것이고, 교통과 운송 과정 중 배출되는 탄소를 언급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과 제품이 이동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강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문구는 책에서 굵은 글씨로 잊을 때마다 여러 차례 등장한다. 또한 빌 게이츠는 환경 친화적 기술이 갖는 추가적인 비용을 그린 프리미엄이라고 규정했다. 이 책에서는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온실가스 배출 요인에 대해서 통상적 기술의 대안이 갖는 그린 프리미엄을 요목조목 정리했다. 빌 게이츠는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는 것은 결코 자선 사업이 아니고, 많은 기업과 일자리가 탄생할 기회라는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즉. 기업이 환경을 추구하는 것과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양립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이 이 책의 차별점이었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 환경보호라는 코끼리를 만졌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은 갈수록 다원화되는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양한 기술들이 등장한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에서 등장했던 기술인 햇빛을 일부 차단하는 태양공학 기술도 이 책에서 짧게 언급되었다. 전자제품으로 먹고 사는 애플이라는 거대기업은 2030년, 즉 7년 안에 모든 제품의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반면, 석유로 먹고 사는 엑손모빌이라는 거대기업은 물밑에서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단체를 지원하며 배출된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기술이 장차 옳을지 모르기 때문에 미시적 관점에서만 환경보호라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거시적 관점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빌 게이츠의 방법론도 환경을 살리기 위한 절대적 레토릭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 책에서는 많은 숫자가 등장하지만, 꼭 숫자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사진작가는 갈수록 작아지는 얼음 위에서 버티는 북극곰 한 마리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환경과 관련된 결정적인 재난이 일어난다면 <기계비평들>과 같은 설득방식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그레다 툰베리와 같이 세계를 순회하며 연설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각자에겐 각자의 역할이 있다. 하지만 빌 게이츠처럼 과학적 데이터를 분석 및 비판할 수 있으면서 세계적인 기업을 리드해 본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 빌 게이츠는 빌 게이츠답게 환경보호의 큰 그림을 설명했다. 이런 기업인 출신 억만장자의 등장이 나는 반갑다.책 한 권으로 인생관이 재정립된다면 그 책에 대한 최고의 극찬일 것이다. 환경을 주제로 한 많은 레토릭을 접했지만, 이 책을 읽고서 환경관이 재정립되었다. 더불어 미래 과학자로서 어떠한 방식으로 드넓은 세상에 내 생각을 알려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이번 학기 수업 시간 중 읽게 된 책 중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책이며, 지인과 가족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고 단평을 남긴다. 참고문헌• 레리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김영사• 전치형 등, <기계비평들>, 김영사• MIT 테크놀로지 리뷰 편집팀,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 2023.7/8월호>, 디엠케이글로벌• 현지용, "해양 플라스틱 오염 주범은 ‘어구·어망’",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663625• 박희윤, " KTX 1년 이용객, 5,000만명 돌파한다", 서울신문, https://www.sedaily.com/NewsView/1HPI9I8JFU• 안현선, "통계청 2020년 어업 총조사 결과", 한국수산경제, http://www.fisheco.com/news/articleView.html?idxno=77336
자동화된 불평등 : 첨단 기술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분석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가
Eubanks, Virginia, 1972-
버지니아 유뱅크스는 미국의 정치과학자로서 New America에 따르면 미국 사회계층 중 빈곤층에 관심이 많으며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연구한다. 그녀의 저서 Automating Inequality는 연구 결과물을 대중서로서 편찬한 작업물로 볼 수 있으며, 경험과 내레이션 위주로 미국 사회가 복지 정책에 자동화 기술을 추가하면서 발생하게 된 문제점이나 딜레마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digital poorhouse(디지털 구빈원)이라는 단어를 만들어서 과거 미국에서 운영됐던 구빈원(한국의 경우에는 형제복지원과 같은 기관으로 생각된다.)과 공통점이 많다면서 프레이밍을 하는데, 이것이 이 책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유 중 하나인가 싶어서 구글 트렌드를 검색해 봤는데, poorhouse라는 단어의 검색 빈도수가 딱히 증가하진 않았다. 아마존에서 제공하는 Best Sellers Rank를 봤는데, 다음과 같다. Best Sellers Rank: #305,842 in Books (See Top 100 in Books)#168 in Poverty#253 in Social Services & Welfare (Books)#316 in Sociology of ClassBS rank가 그렇게 높지는 않은 것과 프레이밍한 단어가 미국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이 책이 담은 내용과는 별개로 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저자는 아마존의 자동 랭킹 시스템과 구글의 트랜드 분석에 기반한 판단 행위도 자동화된 불평등의 일종이라고 볼지 모르겠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좀더 말해보자면, 미국 사회에 한정해서 주제를 바라보고 있으며, 자동화 기술의 도입으로 기존의 공공부조는 변했는데, 여러 구체적인 케이스를 선별했고 각 케이스를 비교하기 보다는 하나의 케이스를 다룰 때에는 과거의 상황에 대한 묘사가 있긴 했어도 그 케이스에 대해 집중하며, 특히 그 변화 중 부정적인 측면을 여러 개인의 인터뷰와 그들이 겪은 어려움에 대한 서술 방식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마지막의 Digital poorhouse의 해체 부분을 제외하면 이론적인 부분은 그다지 등장하지 않는다. 즉, 이 책은 미국에서 공공부조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 부정적인 일면을 알려주는 데에 의의가 크겠으나 저자의 주장 ‘디지털 구빈원의 해체’의 중요성과 이 사안의 사회적 우선 순위를 높이기에는 논리적 치밀함이 떨어진다. 아니면 저자의 생각에는 이미 미국인들 사이에는 본인과 같이 불평등이나 공공부조의 중요성, 인권에 대한 인식에는 common sense가 깔려 있다고 생각해서 이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대중 서적 오히려 너무 빈곤층과 부정적인 측면에만 집중하여 편향된 의견을 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가령, 빅데이터에 의한 개인의 행동 예측은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문제가 되는데, 빈곤층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지만 이는 빅테크에 정보를 제공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문제이므로 더 거대한 담론에서 먼저 논할 필요가 있다. 기술화가 유토피아를 가져오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기업이나 정부 입장에서도 더 효율적으로 복지 정책을 실행하자는 의견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며 기술화를 통해 드러나는 문제점은 관계자들에 의해 꾸준히 지적되는 듯 보이고 발생되는 문제들은 기술화 과정에서의 과도기처럼 생각되지,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회적 불문율이 있어서 자정 작용이 전혀 안 되고 있는 것도 아닌 듯해서 당장 관계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방치하면 알아서 잘 성장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지, 비관계자에게까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 디지털이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 그냥 빈곤층과 공공부조를 어떻게 취급해야할지라는 부분이 더 중요해 보인다. 기술은 그저 이전에는 현실적인 문제로 시도하지 못 했던 작업을 실현 가능하게 만들어줬을 뿐이다. 혹은 기술적 측면은 법에 다 명시되지 않으니 빈곤층이 겪는 어려움이 은폐되기 더 쉬워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물론, 당장의 실무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지만 말이다. 이 책의 내용보다는 홍기빈(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이 작성한 뒤쪽의 해제가 더 흥미로웠다. 공공부조의 본질에 좀 더 집중하고 공공부조는 국가나 교회의 거대한 부 축적의 정당화를 위한 통치기술이라는 견해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럽에서 복지 정책에 기술을 도입해 더 효과적인 복지 정책을 만들었다고 설명한 부분, 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철학을 직접적을 명시한 부분이 자동화된 불평등과 공공부조에서의 기술 도입에 대한 논의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접근 없이 자동화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빈곤층이 꽤 많다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단순한 기록물은 아니기에 저자가 원하는 사회에 대해 저자의 기본 근거를 더 탄탄히 하면 좋았을 것이다. 가령, 과거 미국의 구빈원 렌셀러 카운티에 대해서, 매주 1달러로 빈민을 돌보겠다는 계약을 한 후 노동자들의 무한한 노동력을 통해 구빈원은 2000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언급하는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설명이 필요했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고 보는지가 무엇을 바꾸어야 되는지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해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보자. 우선, 평등이란 무엇인가? 불평등이나 차별이 사회악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주제는 현재에도 논쟁적인 부분이며, 학계에서도 주류 의견을 채택하기 보다는 유명한 이론이 있을 뿐이다. 평등, 분배, 정의 담론에서 대표적인 이론으로는 롤스와 노직의 정의론을 생각할 수 있다. 롤스는 특정 사회 시스템의 정의로움을 판단할 때에는 각자가 처한 현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무지의 베일) 차등의 원칙으로서 불평등이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므로, 자동화로 인해 공공부조에서 큰 피해를 받는 자가 생기면 이는 정의롭지 않은 것이다. 반면, 자유지상주의자인 로버트 노직은 '개인의 자유는 지켜져야 된다'는 논리를 통해 공공부조 자체의 정의로움을 부정한다. 노직의 이론에서는, 공공부조가 있어야 한다면 그 효과를 최소 비용으로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이 책에서 자동화를 통해 비용 효율을 개선하는 것은 설령, 빈곤층의 일부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의롭다고 생각할 수 있다. 참고로 불평등이 항상 정의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예시로, 링컨 대통령은 미국 내 흑인 노예 해방을 선언했는데, 이는 흑인 노예로 산업과 부를 유지하던 남부 측에게는 크게 불리한 선언이었고 공장 위주의 산업이 우세했던 북부 측에는 덜 불리한 선언이었기에 남부 측에 불평등한 정치 행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링컨의 노예 해방을 정의로운 정치 행위로 본다. 이렇듯 평등과 정의 논쟁은 무엇을 기반으로 삼느냐에 따라 특정 행위가 잘못인지 아닌지 여부가 갈릴 수 있다. 빅데이터 문제로 사람들의 범죄 행위를 예측해서 범죄율이 획기적으로 낮은, 민주적인 방식의 빅브라더 사회를 건설한다면 그걸 나쁘다고 볼 수 있겠는가? 그 사회 구성원들이 범죄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면 차라리 국가의 철저한 통제 속에서 범죄율을 줄이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등이나 정의 개념이 논쟁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애초에 평등이나 차별, 정의라는 개념이 왜 필요한지도 생각해보자. 많은 구성원들이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사회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불만을 느낄 것이고 그러한 불만이 쌓였을 때 취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 있는 행동들 중 3가지는 반동, 도주, 저항 포기이다. 북한처럼 국민들에게 저항 포기를 강제할 정도의 무력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반동과 도주는 국가나 지역 공동체의 존속 및 성장에 큰 위협이 된다.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상황은 비현실적이며, 모든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수용하라는 것도 어려우니 지역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서는 특정 불만족스러운 결과라도 수용하게 해야 한다. 즉, 정의나 차별의 개념을 정하는 것은 무엇이 수용 가능한지 아닌지를 구별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구성원들이 그나마 납득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상대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라면 그 구성원이 다른 나라나 시스템 아래서 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끼게 해선 안 될 것이다. 자동화란 무엇인가? 이는 깊게 들어가면 자유의지 담론이나 기계적 인간과 같은 개념과 연관될 수 있는 주제이며, 각자가 갖고 있는 신념에 따라 그 범위가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개념이다. 가령, 동물을 쓰는 건 자동화인가? 오류가 많은 기계를 쓴다면 자동화라고 할 수 있는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이 확률적인 기계를 쓰는 것은 어떠한가? 신체중심 반복 행동 장애를 가진 사람들 데려다 놓고 그 반복 행동으로 업무가 진행되게 하면 자동화 정도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가? 등 다양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자동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장하지 않았다. 저자는 그냥 디지털화하고 사람의 인력을 기계로 대체하면 자동화라고 표현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나는 자동화와 효율성의 개념을 분리해서 볼 것이며, 이루어질 업무 처리 수준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본다. 혹은 자동화의 정의를 ‘특정 알고리즘을 선택해 그 알고리즘에 따라 업무가 처리되게 하는 것’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면 알고리즘에 대한 정의도 논해야 하는데, 이걸로 넘어가면 튜링이나 괴델이 정의한 계산 가능 함수 개념 같은 것도 나올 수 있지만 여기서는 알고리즘을 좀 더 넓게 봐서 프로세스를 (유한 단계 내로)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으로 보겠다. 즉,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그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행동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도 근로자의 행동도 자동화했다고 볼 수 있다. 자동화의 개념을 이렇게 생각하면 왜 자동화가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리즘의 한계에서 기인한다. 전산학에서 유명한 문제인 ‘halting problem’의 예시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하며,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고 하면 적절한 알고리즘을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공공부조를 포함해서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알고리즘을 제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있어 왔다. 다만, 문제를 줄이거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더 많은 알고리즘을 탐색했고, 원하는 결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알고리즘을 택해온 것이다. 즉, 자동화는 현대에 와서 이루어진 특별한 개념이 아니며, 디지털화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노예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노예 신분을 가지도록 자동화한 것이 차라리 더 자동화된 불평등이라고 불리기 적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자동화된 불평등이라고 했지만, 디지털화된 불평등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의 수집, 저장, 활용이 더 용이해졌고, 관리 수준은 더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정부든 기업이든 한정된 자원 속에서 효율성 증대는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됐다. 그러나 기술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는 말에는, 밝은 가능성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가능성도 열렸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여기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범주는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이미 정해져 있다고 가정하고, 긍정적인 가능성을 실현하면서 부정적인 가능성을 긍정적인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무엇이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방안은 과학적 추론에 근거해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신중하게 결정하자라는 것과 일단은 저질러놓고 누구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문제가 발생한 뒤에 피해 보상 및 예방 방지책을 세우자라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반론적인 접근법 2개를 시작점으로 삼을 수 있어 보인다. 물론, 전자의 접근법은 골턴의 골상학, 우생학과 같이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후자의 접근법도 도도새 멸종과 같이 복원이 불가능하거나 기후 변화처럼 원인이 복합적인 느린 재난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자든 후자든 부정적인 가능성을 사회가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며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기록물로서, 그리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AI 지도책 : 세계의 부와 권력을 재편하는 인공지능의 실체
크로퍼드, 케이트
AI 지도책은 AI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중 불편한 진실을 다룸으로써 AI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중요성을 전하고자 한다. 이 책은 지능이라는 개념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사실 지능개념은 수백 년 동안 엄청난 해악을 끼쳤으며 노예제에서 우생학에 이르는 온갖 지배 방식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었다’면서 지능에 대한 긍정적인 편견을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인공 지능이라는 것도 정치적으로 무관한 개념이 아니며 인공 지능 개념을 사회가 수용, 응용하면서 발생하는 사회구조적 변화, 특히 권력과 이익 및 피해의 분배 문제에 대해 집중한다. 그렇게 인공지능을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추출 산업’이라는 보다 큰 범주로 파악하고 자원과 환경적 요인, 제3세계에게 가해지는 피해, 데이터 수집과 개인정보, 데이터 편향 문제, 국가적 차원의 야욕 등을 언급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인공지능은 청렴결백한 기술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AI만 탓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가령, 분쟁 광물은 AI가 아니더라도 자동차, 기본적인 전자제품 등 이미 쓰이는 곳이 매우 많으며[1] 전기만 해도 AI가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 분야에서의 사용량이 결코 적지 않다. AI가 유행하기 이전에도 피의 다이아몬드라는 개념이 있었고, 플랜테이션이라는 노동 착취적인 구조가 성행하고 있는 만큼, 환경 파괴와 제3세계에 대한 착취 문제는 AI를 넘어서 이윤과 자원 생산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이기주의적, 경쟁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회적인 편견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AI를 비롯한 인간의 기술과 사회적 제도이 이용은 사회적 편견 혹은 사회의 보편적 모습을 반영한다. 기술에 특정한 편향성이 반영되었고, 그 편향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특정 집단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그 기술은 재조정될 여지가 충분하며, 이는 이루다, 구글 포토의 흑인 인식 문제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AI가 사회적 편향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일지라도 사회적으로 거부되고 있는 편견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유튜브 알고리즘이나 SNS와 같이 비슷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보다 쉽게 모이게 하는 기술이 사회를 양극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2] 만약 특정 사상이 제거되거나 자정 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그 사람들 스스로가 그 사상을 거부하고 있지 않는 것이며, 기술적 측면의 해법이 아니라 건전한 토론의 장 마련이라는 사회 문화적 요소로서의 해법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과제를 할 때 AI를 활용하기 때문에 비판적 사고력을 저해할 수 있다거나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은 있어도, AI로 인해 사회에서 건전한 토론이 방해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AI의 어두운 면과 한계를 가급적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AI의 발전 방향을 조정하기 위해 유의미하다. AI가 가져올 변화는 인터넷의 도래가 초래한 것처럼 산업 구조적, 정치적, 교육적 측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사회적 재적응을 요구할 것이다. 이때, AI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기술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을 조성한 사회는 영국의 적기조례와 같이 AI의 발전 자체를 크게 저해하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사회로부터 뒤쳐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반면에, AI의 부정적 측면 및 그 부작용을 억제할 방안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논의는 AI는 통제 불가능이라는 환상 대신에 AI는 통제 가능하다는 환상을 더 설득력있게 퍼뜨리기에 더 적합하다. 즉, 경쟁력 있는 사회와 안정성 있는 사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AI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AI의 부작용을 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AI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AI의 사회적 잠재력을 제한하기보다는 오히려 AI를 더 신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발명함으로써 AI의 사회적 잠재력을 증대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다. 저자는 AI가 보이고 있는 한계 및 어두운 면 등을 통해서 AI 발전의 신봉자들을 비판하고 AI에 대한 태도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잘 지적했다. 다만, AI에 대해 지적한 문제에 대해 논할 때에 AI만 집중하기 보다는 자본주의와 기술 전체, 그리고 사회에서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를 넘나들어야 할 것이다. [1] https://www.etnews.com/20150305000248[2] 장승진 and 한정훈. (2021). 유튜브는 사용자들을 정치적으로 양극화시키는가?: 주요 정치 및 시사 관련 유튜브 채널 구독자에 대한 설문조사 분석. 현대정치연구, 14(2), 5-35.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 우리가 가진 솔루션과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
게이츠, 빌
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27%, 510억 톤의 31%, 510억 톤의 19%, 510억 톤의 16%, 510억 톤의 7%. 이것은 발전(發電), 제조업, 농축산업, 운송업, 냉난방의 다섯 가지 산업 분야가 배출하는 온실 가스의 비율을 나열한 것이다. 저자는 이 비율을 아예 각 목차의 제목으로 선정했다. 다음으로 서문에서는 첫 문장이 '우리는 변할 수 있다'로 시작한다. 저자 자신에 대한 소개나 책에 대한 개괄 등이 처음에 등장하는 일반적인 서문과는 달리 청유형의 강력한 선언이 서문의 첫 문장을 차지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점이었다. 이와 같은 책의 특징들은 그만큼 저자가 지구 온난화에 온실 가스 배출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매우 중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었고, 저자가 그만큼의 위기의식과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성을 보인다는 점이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전 세계에 컴퓨터라는 첨단 산업을 대중화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초대 수장 빌 게이츠가 전하는 기후 이야기는 그의 대중적인 인지도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강력해 보인다. 빌 게이츠는 윈도우로 대성공을 거둔 뒤에도 부인과 함께 설립한 기부 재단인 '게이츠 재단'을 운영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행하고 있는 사업가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전 지구적인 문제인 기후 변화를 들고 나섰다.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비가역의 변곡점을 넘었다며 비관하는 와중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기후 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았다. 2050년까지 주요 선진국부터 탄소 제로화를 이루겠다는 그의 꿈은 기술과 시장, 그리고 정부의 대응이 총집합한 초국가적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상당히 공허해 보이는 스케일이지만 게이츠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모호한 빅 플랜만을 제시하지 않았고, 각 분야가 해야 할 역할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세계의 여러 권위자들 중에서도 이 정도로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게이츠는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온실가스 문제에 대해 크게 다섯 가지 분류로 나누었고, 그것이 바로 목차에 등장했던 수치들이었다. 그의 계획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했고, 이에 필요한 기술 역시 제안했다는 점이다. 발전 문제를 보면, 게이츠는 화석 연료를 점진적으로 전기 에너지로 대체해야 함을 역설하며 전기화(electrification) 기술을 언급했고, 이 전기화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과제로써 한 기업이 개발하고 있는 용융 옥사이드 전기분해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기술의 상용화를 전기화의 구체적인 과업 중 하나로 삼았다. 또 다른 예를 보면, 그는 이산화탄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발자국이 더 낮은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하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으로써 정부의 저탄소 제품 우대 정책 시행을 삼았다. 이와 같이 게이츠는 각각의 분야에서 달성될 수 있는 목표치와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과제를 설정함으로써 자신의 계획에 대한 신빙성과 현실성을 부여하는 데에 성공했다. 다음으로 특기할 부분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2050년 제로 탄소 계획을 별개로 보았다는 것이다. 일번적인 통념이나 국제적 협약이나 공통적으로 더 가까운 년도를 데드라인으로 잡은 환경 보호 협약은 더 먼 년도를 데드라인으로 잡은 협약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게이츠는 이러한 사고 방식을 우려했는데, 이는 둘 중 어느 것을 목표로 잡느냐에 따라 행해야 할 과업이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7년 후인 2030년을 목표로 온실 가스를 일정량 감축해야 한다면, 각국 정부와 기업은 '수치 감소'에 집착하고 된다. 그러나 2050년을 목표로 제로 탄소를 이루어야 한다면 온실가스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한 장기적 로드맵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재미있게도 이 부분은 게이츠가 자국민의 특성을 잘 파악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미국인들이 대체로 장기적 사고에 약하여 숏 텀 플랜을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자국이 자칫 간과할 수 있는 문제를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이 책은 기후 변화라는 범지구적 문제를 기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전의 기후 변화 위기 경고 서적들과는 다소 다른 양상을 갖고 있다. 일례로 지구 환경 문제를 물리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책 중 가장 유명한 편인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보면, 저자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결국 도달할 수밖에 없는 엔트로피 분수령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점진적으로 인류가 더 적은 공간과 에너지를 사용해야 함을 역설한 바 있다. 이 저자 역시 게이츠와 비슷하게 농업, 제조업, 운송업 등의 여러 가지 산업 분야가 지구의 엔트로피 상승 가속화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는데, 그는 산업시대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원·기술 집약적인 삶에서 벗어나 더 로우 에너지 레벨의 삶으로 인류가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얼핏 들으면 게이츠의 숏 텀 플랜보다도 상당히 미래지향적이고 이상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리프킨이 가장 크게 간과한 한 가지가 있었고, 게이츠는 그것을 짚어냈다. 그것은 바로 경로의존성이었다. 경로의존성이란 일정한 제품이나 관행에 익숙해져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의 적절성에 관계없이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상적이고 급진적인 리프킨의 계획은 기후 변화를 피하고 싶어하면서도 여전히 여러 고도화 기술을 사용하기 원하는 현대인들의 경로의존성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제껏 잘 사용하던 스마트폰, 노트북, 자동차, 고속철도 등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해 보라. 현재의 관점 하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 뿐더러, 애초에 그런 것들이 필요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로드맵이 너무 공허하다. 반면 게이츠는 굉장히 현실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리프킨을 비롯한 여러 이상주의자들이 고려하지 못한 경로의존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현실성을 위해 모든 사람의 노력보다 특정 분야에 속한 사람들의 특정 노력을 강조했다. 이는 위급 상황 하에서 119를 불러야 할 때 신고할 사람을 정확히 지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료 및 소방 전문가들의 의견과 합치하기도 한다. 한편 우리가 살고 있는 2023년의 관점에서 보면 게이츠의 진단과 계획마저 상당히 낙관적인 분석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미 지구 온난화에서 끓어오르는 지구로 변화해 버린 현재의 지구 환경에서는, 기후 변화를 실질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꽤 긍정적인 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대중은 물론이고 과학자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진행되는 지구 파괴의 현장에서 역설적으로 게이츠의 낙관적인 주장은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실행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제6대 WHO 사무총장 이종욱은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결국 100만 명에게밖에 공급하지 못했는데, 그는 이에 대해 실패는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큰 결과를 남기는 법이라며 실행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지구 대기의 황폐화가 심각해질수록 게이츠의 마스터플랜은 계속해서 각광받을 것임이 분명하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 : 1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정지훈
역사는 자연과 인간 활동의 기록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역사는 인간의 전반적인 활동을 시간 순서대로 구성한 '통사'로, 이러한 역사기록물은 대체로 시간대와 지역에 따라 분류된다. 고대 그리스, 고대 중국, 중세 유럽, 조선시대,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 서유럽 등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역사를 분류하는 데에 익숙하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한 일들의 기록이 역사라면, 굳이 시간과 공간만을 기준으로 역사를 관찰할 필요는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브제나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구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2천 년 전에 쓰인 중국의 역사서 <사기>에 잘 제시되어 있다. 사기에는 많이 알려진 추보식 기록물인 <본기> 외에도 인물 중심의 <열전>과 오브제 및 사회양식 중심의 <서>가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역사서를 분류할 때, <거의 모든 IT의 역사>는 사기의 <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20세기와 21세기를 풍미하고 있는 IT의 역사를 크게 두 가지 사이클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사이클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IBM, 월드 와이드 웹으로 대표되는 컴퓨터의 사이클이다. 20세기 초에 엘런 튜링이나 존 폰 노이만 등의 선구적 전산학자에 의해 이론이 정립되고, 1940년대에 최초의 '고급 계산기' 애니악이 등장한 이후로 컴퓨터는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했다. 진공관이 트랜지스터로, IC 칩으로, 멀티코어 프로세서로 크기는 작아지면서도 성능은 더 좋아졌고, 어느새 컴퓨터는 연구실을 한가득 차지하는 고철덩어리에서 가방 안에 들어가는 노트북이 되어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컴퓨터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부품의 분업화와 브랜드화를 꼽았다. 기본적으로 완본체 판매자가 가장 큰 이윤을 취하게 되어 있는 컴퓨터 산업구조에서 부품을 담당하는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각각 자신들의 부품을 전문화·브랜드화함으로써 완본체 제작자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발전에서 큰 영향을 미친 다른 요인은 바로 접근성의 강화이다. 복잡한 명령어를 검은 화면에 하나하나 입력하여 프로그램을 실행하던 이전의 DOS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친숙한 버튼 위주로 구성된 GUI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주를 크게 증가시켰다. GUI는 맥 진영에서 먼저 개발되었지만 특유의 폐쇄성과 독점성 때문에 시장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허점을 윈도우 95가 잘 파고든 것이다. 사람들의 접근성을 올린 다른 하나의 요소는 바로 인터넷이었다. 사실 아무리 GUI가 세련되고 성능이 좋다 하더라도 인터넷 이전의 컴퓨터로는 해당 기기 안에 저장된 데이터만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명 및 월드와이드 웹으로의 대중화 덕분에 여러 사람들의 데이터가 웹이라는 가상 공간 내에서 무한히 공유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인터넷의 저변 확대에 따라 정보를 모아 보여주는 포털의 역할도 중요해졌으며, 그 동앗줄을 잡은 장본인은 야후!,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구글이었다. 인터넷이라는 인프라가 전 세계에 확보된 이후로 사이클은 두 번째 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때마침 2007년, 휴대용 기기이던 무선 전화기에 인터넷 기술을 융합한 아이폰이라는 물건이 등장한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인터넷을 지원하는 컴퓨터와 전화기를 합치거나, 컴퓨터를 소형화하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그들이 모두 간과했던 것은 손바닥에 들어갈 정도의 작은 기기에는 그것에 맞는 다른 형태의 운영체제와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폰은 특유의 편의성에 힘입어 점유율을 확대해 나갔던 것이다. 구글 진영에서도 iOS의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보았고, 자사의 기기에 딱 맞추어 돌아갔던 iOS와 반대로 대부분의 기기에서 호환 가능하다는 특성을 최대한으로 살려 안드로이드를 내놓았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용한 전략을 거의 비슷하게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기타 소속 운영체제와 스마트폰이 도태되고, 현대의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으로 대표되는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양분되었다.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무대가 등장함에 따라 이 신문물과 기존의 인터넷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 싸움의 승리자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거대 플랫폼이었다. 서서히 대두된 빅데이터 기술의 등을 타고 플랫폼 사업은 전 세계인들을 잠재적인 사용자층으로 포섭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 기업 공룡의 과포화는 결국 소수의 독과점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가 증명했고, 사용자를 기만하는 수준으로 범람하는 유튜브 광고가 증명하며, 음란물 수준의 고수위 광고도 멀쩡히 피드 사이에 띄워놓는 페이스북이 증명한다. 이런 저질 서비스를 제공해도 소비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플랫폼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수많은 플랫폼 빅테크들은 독점 크리에이터나 동시송출 금지 등의 갖가지 정책으로 사람들을 묶어두려 한다. 사실상 두 번째 사이클은 몇몇 공룡들의 배 불리기에만 도움된 셈이다. 저자는 앞으로 다가올 세 번째 사이클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플랫폼의 다변화와 사업의 민주화를 꼽는다. 사실상 실패로 끝나버린 두 번째 사이클을 타산지석 삼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하드웨어의 발전과 함께 콘텐츠 플랫폼이 다양하게 분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사실 이 부분에서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이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살짝 의문이 든다. 계속해서 폭증하는 콘텐츠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저장공간과 더 큰 서버, 더 큰 클라우드가 필요해질 것인데,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非빅테크 기업이 과연 존재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여러 다른 플랫폼에 흩뿌려져 있는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여러 플랫폼에 동시 가입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결국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사람이 그나마 많이 모이는 플랫폼에 콘텐츠를 집중할 가능성이 높고, 그려면 결국 또 두 번째 사이클의 반복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결국 인간이 지나친 온라인화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기본적으로 인류는 수만 년간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관계를 가졌고, 현대인들은 이 오프라인 관계의 결핍을 온라인으로 대리 충족하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온라인만의 장점인 빠른 확산성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한 관계에 온라인 세계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징검다리의 구축이 필요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오프라인 아이덴티티에 더해 '온라인 명함'을 하나씩 갖게 되고, 이 명함이 링크하는 자신만의 온라인 공간을 꾸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온라인 명함이라는 징검다리 역할은 저자가 관심있게 본 NFT가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미 구축되어 있는 인프라인데다가 그 사용성도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코인 투기 시장에 연루되어 망쳐진 인식만 개선하면 되는 문제이다. 플랫폼 자체가 필요 없는 오프라인 관계와, 개인을 더 잘 알 수 있는 철저히 개인적 온라인 공간이야말로 플랫폼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IT는 기술이고, IT의 역사를 다룬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술의 역사를 다룬다는 것이며, 이 기술이라는 것 역시 인간의 오브제인 만큼 인간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자가 이 저서에서 가장 놓친 부분 또한 바로 이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기본적인 흐름이 IT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여러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에 사람들의 움직임은 빠져 있다. 아이폰이 등장한 건 아이팟과 휴대폰을 둘 다 들고 다니기 귀찮아했던 사람들의 필요에 의한 결과이며, 플랫폼 사업이 번영한 것 역시 인간들이 새로운 관계에 대한 필요에서 기인한 것이다. 아무리 신기한 VR 고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한 충분한 설명과 사람들의 필요가 동반되지 않으면 상용화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계와 기업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이에 따라 예측된 이 책 속 미래는 우리의 실제 미래와는 꽤 다를 것이라는 예상을 조심스레 해 본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 : 1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정지훈
이 책은 제목 그대로 20~21세기 거의 모든 IT의 역사를 담으면서 마지막에 근 미래에 발생할 변화를 예견하고 있다. 초반에는 미국 중심이었다가 후반에는 네이버, 다음, 카카오, 손정의의 소프트뱅크 등 동양의 IT도 다룸으로써 방대한 정보를 연대별로 정리했고 각 사건에 대해 당시 이 기업이 이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와 같은 관점과 해석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시중이나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들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좋은 역사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정지훈은 2023년 현재 D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의 겸직교수로 한양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보건학 석사,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 이런 학력을 보면 IT 계열과는 큰 연관이 없으실 듯 하지만, DGIST의 교수 소개를 보면, 저자는 생의학 광학 이미징 / 의료 영상용 머신러닝 / 디지털 헬스케어 / 기술 및 헬스케어 스타트업 투자 및 관리를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이를 보면, 저자가 IT/공학 분야에 진출하긴 했어도 여전히 바이오와의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이오 쪽이랑 큰 연관이 없는 <거의 모든 IT의 역사>라는 책을 서술했다는 것이 다소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큰 가치를 지닌다는 저자의 생각이 녹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에서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답을 제시한다. 역사를 통해 미래에 대한 추세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답변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강연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한국사 교육 방식이 가치가 없으며 오히려 미국사를 배우는 게 더 낫다면서 비판했다. 나도 한국사를 배우면서 단순한 사건의 나열, 재구성된 지식의 흡수가 아니라 역사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본인의 사고 방식이나 문제 해결에 쓰고,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상해보는 훈련을 하면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저자의 역사관은 다소 비판의 여지가 있다. 우선, 상황에 적절한 인사이트 자체가 쉽게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비교적 방대하거나 세부적인 지식의 학습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암기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역사의 한 사건에 대해 인과 관계 등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상황, 윤리관, 각 인물의 능력과 과거 행적, 그 결과 등을 다각도로 이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 습득 능력과 역사의 큰 줄기를 갖출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의 역사 교육이 잘못된 방향이라기보다는 그 깊이가 얕거나 지식 습득 후 추가 토의 과정이 없다는 점이 비판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추가적인 토의를 한다면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공교육이 무엇에 가치를 두고 만들어졌는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공교육은 영재에게 초점을 맞춘 교육이 아니라 평균 이하의 학생이 잘 따라올 수 있는지를 큰 가치로 두며, 대학과는 달리 한 과목만을 집중해서 가르치지 않기에 국어, 영어, 수학을 포함해 다른 과목과의 학업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학생끼리 토의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으면서 역사를 배우게 되면, 진도가 매우 느리거나 학업 부담이 크게 증가함은 충분히 예상된다.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가 당시 첨단 기술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흑요석 가공 기술이 말이 되고, 인간에게 예술을 추구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료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동시에 제공하면서 각각의 해석의 설득력을 검토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인사이트를 얻는다면 정말 좋은 일이지만, 이를 얻기 위해 소요된 시간만큼의 기회비용이 학생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역사 교육이라는 실질적 문제에 대해 저자의 방식이 과연 유익할지, 만약 과도기가 있어서 당시의 학생들이 여러 피해를 볼 수 있다면, 그 과도기가 얼마나 길어질지 등도 따져야 하기에 더 구체적인 논의 없이는 수용하기 어렵다. 또 다른 문제로는 평가 방식의 문제가 있다. 현재 한국 대학은 취업사관학교로,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 기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학생들이 졸업 후 처하게 될 환경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기업이나 대학에서 그 전에 다녔던 학교에서 제공하는 지표를 신뢰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답이 없는 교육 방식은 기피된다. 그렇다고 한국사를 평가에 반영하지 않겠다거나 정답을 맞추는 방식으로 한국사 시험을 운영하고 답을 스스로 만드는 방식으로 한국사 수업을 운영하여 시험과 수업 간 괴리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초등학교나 대학교라면 몰라도, 중/고등학교에서 그렇게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은 외면 받을 것이다. 저자의 희망처럼 교육 풍토를 바꾸기 위해서는 취업 시장, 대학 입시 등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 적절한 대안을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고, 수많은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큰 문제이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는 많이 동의하며, 역사 공부를 실질적인 가치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IT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근 미래를 예견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미래 기술에 대한 논의인 <특이점이 온다>와 비교하는 것도 유의미할 수 있다. <특이점이 온다>는 미래의 기술적 발전에 대한 예측과 인공 지능, 로봇공학, 유전공학 등의 분야에서의 혁신에 대해 탐구하고, 특이점에 도달할 경우의 사회, 경제,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나 결국 특이점이 언제 올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고, 그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면 <거의 모든 IT의 역사>는 역사를 철저히 분석하고, IT의 혁신을 이끌어온 주체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연구실을 벗어나 치열하게 경쟁하는 산업의 모습을 보여주고 가까운 미래에 대해 예견함으로써 더 높은 설득력을 지녔다. 비록 저자는 강연에서 미래학을 학문이 아닌 영역으로 봤으나, 미래를 예견/상상하는 것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인지를 사람들이 알게 되면 역사 교육의 모습이 바뀌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 우리가 가진 솔루션과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
게이츠, 빌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세계적으로 성공한 혁신적 사업가이자 자선사업가로서 널리 존경받는 부자들 중 한 사람이다. 이런 빌 게이츠는 코로나가 거의 마무리된 2020~2021년에 기후 위기를 매우 심각하고 세계적인 협력과 과학기술적 혁신,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책을 저술했고, 그린 프리미엄, 제로 탄소 배출, 탄소세, 더러운 전기 등의 개념 등을 아우르면서 세계에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빌 게이츠가 원래부터 이렇게 지구적 문제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고,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서는 멀린다와의 만남 이후에 이타적, 협력적이고 사회 환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됐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고 말한다.[1]이 책에서도 종종 멀린다가 언급된다. 가령, 농업 및 목축업의 탄소 배출 문제에서 소의 방귀라는 단어를 어떻게 쓸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내용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기후 위기에 대해 빌 게이츠와 함께 고민하고 그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많았음을 암시한다. 특히, 감사의 말을 보면 워렌 버핏과 같은 또다른 유명 인사부터 에너지 전환에 대한 스밀 교수, 빌 게이츠의 가족 등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을 단순히 빌 게이츠 한 명의 주장이라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기후 위기에 대해서 숲과 나무를 실질적인 수준에서 개괄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책들과 비교해보면, 이 책은 보다 구체적인 문제 상황을 정하고, 이에 대한 단기-중기적인 관점을 취하며 동시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구체적인 제도적 처방까지 하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로서 구글 및 애플과 경쟁하면서 안드로이드 플랫폼, 검색 엔진, 윈도우 OS, 하드웨어 등에서 패배와 승리를 반복하면서[1], 큰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큰 그림과 작은 그림, 연구실 속의 상황부터 시장, 정부 및 국제 정책까지 전반적으로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기후 재난에 대해 단순히 인간이나 개인을 책망하기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현 상황이 왜 유지되고 있는지 등을 그린 프리미엄 등의 용어를 통해 경제적, 합리적으로 지적한다. 특히, 독자를 많이 배려했는데, 우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수치에 대한 감을 익히게 하기 위해 사고 실험이라면서 비유를 들어주면서 최대한 이해를 도왔고, 개인의 노력은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으며, 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효과적인 탄소 감축 방법이 아니라는 부분, 산업체와 정부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다는 등 기후 위기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주며 독자의 양심적 가책을 자극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개인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 또한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지구적 관심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유명한 미국 45대 부통령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과 비교했을 때[2], 북극곰 등 고통 받는 동물들, 세계 기온 및 해수면 현황, 자연재해의 빈도에 대한 내용이 빈약한 이 책에서는 기후 위기가 실재하고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과학적, 통계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기에 과학 이론적인 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기후 위기를 실증하는 부분을 많이 안 다루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과학을 믿지 않는 세력이 종종 강한 정치적 목소리를 가진다고 언급하긴 했다. 그리고 엘 고어가 2007년 저술한 시점으로부터 이 책을 저술한 시기인 2020년이 되면서 이제는 기후 위기를 믿는 쪽이 더 표준적인 과학 이론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예상 독자도 기후 위기를 과학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으로부터 기후 위기에 대해 과학-이론적인 내용이나 기후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동기 부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자들이 이미 기후 위기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 것을 사실상의 전제로, 그 이후의 행동 방향을 제시한다. 빌 게이츠는 스스로 자신이 기술적 낙관론을 옹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기나 하버-보슈법 등이 기후 문제를 일으켰듯이 어떤 기술이라도 새로운 문제를 야기해왔다는 것이 역사의 반복이다. 어쩌면 미래 세대가 직면하고 큰 관심을 가질 문제는 현 세대의 지도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일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 전기와 관련한 2명의 천재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도 기술을 찬양하던 사람들이었고, 전기 혁명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들의 업적으로 화석 연료를 이용한 전기 발전소가 많이 지어졌고 이것이 그린 프리미엄을 높인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 및 기후 변화라는 전지구적 문제를 야기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W. 버나드 칼슨의 <니콜라 테슬라 평전>을 읽어봐도 환경 문제나 기후 변화에 대한 언급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3] 물론, 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빌 게이츠의 노력은 중요하며, 이 책은 상당히 균형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책에서 제시된 방향이 야기할 또다른 부작용에 대해서 고려하고 새로운 방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된 기술 중 가장 논란이 될 것 같은 기술은, 지구 공학인데, 이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 2023.7/8월호>에서도 언급된 기술이며, “태양지구공학과 같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방식을 너무 빠르게 추진하면 오히려 해당 분야의 연구가 지연되고 우리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4] 오히려 문제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 현재의 산업계에 대한 용서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며 말이다. 발상의 전환으로 기후 위기 문제는 인류의 비약적 진화를 통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기계인류가 되는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고 복잡한 연산이 경제적으로 가능해진 컴퓨터가 나와[5] 기후 변화와 자연 재해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게 되고, 제니퍼 다우드나의 <크리스퍼가 온다>에서 밝힌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의 유전자를 편집하여[6] 더위와 추위에 내성을 부여하고, 입맛과 소화 능력을 변화시켜 새로운 먹거리를 확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는 가능성의 일환일 뿐, 빌 게이츠처럼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설령 기후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 책의 마지막에 등장한 혁신에 대한 공급과 혁신에 대한 수요를 동시에 늘리는 사회적 시스템의 구축은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듯이, 기후 문제가 이 책에서 제시하지 않은 방법으로 해결 가능해질지라도 이 책에서 제시한 길이 무가치해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이상 기후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고, 여름에 너무 덥거나 겨울에 춥거나 혹은 기온 변화가 너무 빨라지면 이상 기후나 지구 온난화를 원인으로 들먹이곤 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겠으나 인과 관계를 이렇게 쉽게 말해도 되는 것인지는 의심된다. 이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개별 사건에 대해서 기후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온과 관련하여 데이터가 궁금하여 기상청 홈페이지에서[7] 2000년도부터 2023년까지 월별 기온을 표와 그래프로 정리해봤다. 다음의 표는 각 연도별 매월 1일의 기온 및 1월~12월까지의 평균을 소수점 아래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여 나타낸 것이다. 그래프의 경우, 24개의 그래프를 모두 그릴 경우 선을 구분하기가 지나치게 어려워져서 2023년도 그래프와 100으로 나눈 나머지가 3의 배수인 연도의 월별 기온 그래프를 엑셀로 그렸다. 2023년도의 평균 기온은 12월 기온이 누락됐기에 적절한 수치는 아니다. 그러나 연도별 평균 기온만 보면 그리 오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추워진 효과로 상쇄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표준편차를 확인해보자. 마찬가지로 2023년의 표준편차는 제외하고 생각해야 한다. 2011년부터 2022년까지의 표준편차의 평균은 10.82583이고, 2000년부터 2010년까지의 표준편차의 평균은 10.09311이다. 표준편차로는 약 0.73 정도의 차이지만, 표준편차가 오르긴 했다. 그래프를 봐도 2000~2010년 사이의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그래프를 기준으로 최근의 그래프가 여름에는 더 위쪽에 위치해 있고, 겨울에는 더 아래쪽에 위치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재해의 빈도까지 고려하지는 않았지만, 기온만으로도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이상 기후의 존재성을 뒷받침하고, 우리 사회가 이상 기후를 걱정하는 것을 넘어서 실질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2023년 7월, 한국에서 청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가 발생하여 9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는 지하차도 해당 지역의 임시 제방이 폭우로 급증한 유량을 버티지 못해 무너져 지하차도로 물이 빠르게 흐른 것으로 보인다.[8] 이 책의 지적처럼 이런 개별 사고들이 정말 기후 변화가 원인이었고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 여름에는 다른 평년보다 비가 291mm가 더 많이 왔고 평균 기온도 1도씨 더 높았다고 한다.[9] 우리가 10~20년 전에 만든 사회의 기반 시설들은 이러한 기후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최근에 시설을 만들 때 이러한 기후 변화 위험성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즉, 우리 사회가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것이다.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평균표준편차2023-0.20.9617.514.622.827.729.924.518.419 16.59.7963142022-4.3-1.35.89.213.422.126.628.62420.913.1-5.412.711.555742021-4.254.717.710.220.226.327.121.421.112.9-1.313.410.10242020-2.22.65.811.320.219.721.125.326.618.813.71.113.79.4115472019-5-2.16.65.516.418.923.926.323.723.114.94.613.110.335642018-1.3-4-0.215.620.423.821.933.625.515.48.45.513.711.4844720172.7-45920.123.325.328.623.318.214.4-2.213.610.7526320161.2-6-2.715.318.823.32428.423.221.11.54.112.911.65412015-7.7-32.412.92121.723.728.225.916.37412.711.45753201444.9615.61624.72630.224.119.217.3-1.115.69.6284412013-4.77.30.89.213.221.727.12823.521.614.84.513.910.23972012-3-12.88.74.622.621.421.630.825.218.15.6-0.911.812.814262011-6.8-0.20.59.112.51825.125.62712.716.15.812.110.473522010-7.60.82.9712.319.126.127.5261611.47.212.410.569332009-5.85.33.35.917.421.723.525.423.721.79.76.213.29.8457552008-6.3-3.338.819.821.624.827.719.719.8117.912.910.6156420073.3-5.410.29.11420.419.827.220.418.38.44.412.58.82425220061.41.709.71822.722.627.724.220.715.63.114.09.7815732005-4.9-10.2-0.311.22119.823.825.326.820.112.55.912.611.9246820043.73.11.79.119.621.22429.424.716.614.85.214.49.2092462003-4.7-1.36.516.415.923.52325.8221614.37.213.79.457172002-4.81.46.61318.920.2252623.519.34.54.813.29.9203492001-4.5-5.84.96.717.218.825.126.826.115.411.52.112.010.9549920005.5-6.62.310.314.220.425.626.324.420.312.66.213.59.921228표1. 서울의 연도별 월별 기온 및 평균과 표준편차 그림1. 월별 기온 그래프Reference)[1] 정지훈, <거의 모든 IT의 역사 (1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2020년, 메디치미디어[2] 앨 고어, <불편한 진실>, 2006년, 좋은생각[3] W. 버나드 칼슨, <니콜라 테슬라 평전>, 2015년, 반니[4] MIT 테크놀로지 리뷰 편집팀,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 2023.7/8월호>, 2023년, 디엠케이글로벌[5]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2007년, 김영사[6] 제니퍼 다우드나,새뮤얼 스턴버그, <크리스퍼가 온다>, 2018년, 프시케의숲[7] 기상청 날씨누리>육상>과거관측>요소별자료https://www.weather.go.kr/w/obs-climate/land/past-obs/obs-by-element.do?stn=108&yy=2000&obs=07[8] 이재영, 홍준석, 오송지하차도 침수원인 '미호천 임시제방' 지목에 책임소재 논란, 2023-07-16 18:26, 연합뉴스(URL: https://www.yna.co.kr/view/AKR20230716050400530)[9] 박정연, 올 여름 평년보다 1도 더웠고 비 291.2mm 더 내렸다, 2023.09.07 14:05, 동아사이언스(URL: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1527)
거의 모든 IT의 역사 : 1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정지훈
추천하지 않음 IT의 역사는 재미있고, 알아야 할 가치가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오늘날 IT의 역사는 한국사보다 중요할 수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백, 수천 년 전 왕국의 흥망성쇠보다 지금 이 독후글을 어떻게 연필로 쓰고 있지 않은가를 아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갖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권하고 싶지 않다. 과거 이한용의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에서도 책의 아쉬운 점을 대거 토로하며 독후글을 쓴 경험이 있다. 그때는 전면 개정판의 출간을 희망한다고 마무리했는데, 이 책은 초판이 아니라 1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이 책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고 다소 과감한 결론을 감히 내리며 독후글을 시작해 본다. 이 책을 평가절하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치게 저자가 주장하는 체계에 맞춰서 역사를 서술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인이 주장하는 체계를 유지하려고 많은 시도를 하였다. 일단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에릭 슈미트가 1955년에 태어난 것에서 착안하여 인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그래서 '사람의 역사가 IT의 역사다'라는 제목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했고, 첫 챕터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았다. 1955년에 태어난 세 사람이 젊은 시절 같은 잡지를 보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라는 다른 생각을 했다는 것은 유비, 조조, 손권의 삼국지를 연상하게 되어 인상적이다. 하지만 삼국지가 다루는 3세기 중국의 역사와 20, 21세기 IT의 역사는 같은 듯 다르다. 삼국지는 도입부에서 작고 많은 세력들이 '군웅할거'를 이루다가 삼국이 형성되고 이내 한 나라로 통일는 흐름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반면, IT의 역사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이전에도 휴렉 팩커드, IBM과 같은 공룡들이 있었다. 게다가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 일론 머스크의 페이팔과 테슬라의 등장까지 저자가 시작했던 세 인물 중심의 서사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삼국지에서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유비, 조조, 손권이 사망하고 나서도 아들이 권력을 승계하며 세 개의 축이 유지되었다는 점이 큰 차이이다. 이 책이 인물 위주로 IT의 역사를 설명하려고 했던 반면, 첫 챕터를 제외한 목차는 개인용 컴퓨터 혁명, 소프트웨어 혁명, 인터넷 혁명, 검색과 소셜 혁명, 스마트폰 혁명, 클라우드와 소셜 웹 혁명, 그리고 IT의 인간 초월 순으로 쓰여 있다. 즉 시간 순서대로 시대를 대표하는 혁명적 제품(product)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를 시간 순서의 혁명으로 나열한 것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닮았다. 그러나 이런 제품 중심적 서사와 프롤로그와 첫 챕터에서 강조했던 인물 중심적 서사는 적절하게 양립할 수 없었고 책 한 권의 일관성을 포함한 많은 것을 희생했다. 우선, 독자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다음으로 책의 제목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챕터를 설명할 때 하나의 혁명을 선택하여 집중하는 반면, 다른 제품의 발전은 전혀 다루지 않거나 아주 간단하게 다루었다. 책의 제목이 <거의 모든 IT의 역사>이라면, 말 그대로 거의 모든 IT 관련 인물과 제품을 다루었어야 했다. 더불어 <사피엔스>에서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는 세 가지 혁명을 충분한 분량을 할애하며 세 가지 혁명이 왜 혁명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를 독자에게 납득시켰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사피엔스보다 얇은 책 한 권에 여섯 가지 혁명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저자 역시 책이라는 매체는 시간 순서적(Chronological)인 정보를 서술하는 데에는 우수하지만, 병렬적 사고를 전달하기에는 좋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며 책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나는 저자가 지적한 사항이 명저는 극복한 단점이고 저자의 책은 극복하지 못한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저자의 생각이 맞다고 가정하더라도 강연에서도 똑같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저자는 하드웨어, 연산, 네트워크, 가상 플랫폼, 툴과 표준, 결제 서비스, 콘텐츠 서비스 순서대로 IT 혁명의 사이클이 굴러간다는 이론을 인용했다. 하지만 강연 도중에도 이 이론과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가령 AI에 있어서는 이전 사이클에서는 가장 나중에 실현되었던 콘텐츠 서비스가 가장 먼저 실현되었다고 말했다. 천동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주전원을 추가하며 권위를 유지하려 애썼던 것이 연상되었다. 무엇보다 저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육하원칙에서 '누가'와 '언제'를 예측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애플이 2007년에 아이폰을 만들어서 판을 바꿀 것이라고 예측하기 어려운 것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누가'와 '언제'는 사람들이 육하원칙에서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대상이다. 그래야 어느 회사에 언제 투자해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하더라도, '누가'와 '언제'가 빠진 미래예측에 가치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누가 주인공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간 VR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주장은 무책임한 점쟁이의 예측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틀린 예측을 했다고 비아냥 받을지언정, 자신만의 근거를 담아 2045년과 같은 구체적인 연도를 명시하며 미래를 책임 있게 예측한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 방식의 설명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부가적인 요인은 이한용의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와 마찬가지로 그림의 부재이다. 이 책에서 '거의 모든 동아시아 IT의 역사'라는 스페셜 챕터(Special Chapter)에만 많은 삽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나마 그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다. 저작권과 같은 사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독자는 그런 사정을 감안하고 책을 평가할 의무가 없다. 굳이 사진이 아니더라도 적절한 통계 그래프나 다이어그램을 적극적으로 넣었다면 놀라운 IT 기술의 발전을 더 놀랍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은 위키피디아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 내용의 50퍼센트는 위키피디아가 정보의 원천이 되었다. (중략)"라고 소개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불특정 다수가 불시에 수정할 수 있어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포함될 수 있는 위키피디아를 주된 참고문헌으로 정한 것을 문제 삼지 않더라도, 이 책 문제점의 50퍼센트는 위키백과가 원천이 되었다고 비꼬고 싶다. 우선 "너무 많은 내용을 참조했기에 각각의 표제어들을 모두 나열하지 못했다"고 서술했는데, 적어도 표제어와 접속 일시 정도는 함께 적었어야 했다. 또한 이 책에서의 거의 대부분의 문장은 평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백과사전을 읽는 것과 같은 평이한 문체는 위키백과를 다수 인용해서 그런 것 같다. 저자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한 것을 보인다. 그래서 한국 사회와 기업을 평가하는 문장과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을 담은 문장을 다수 넣었는데, 스토리텔링에 미약한 도움만 줬다. 김명진의 <20세기 기술의 문화사>와 같이 언론, 정치권, 대중의 반응을 인용하거나 <사피엔스>와 같이 적절한 비유와 예시, 혹은 약간의 유머를 담았다면 훨씬 완성도 있는 책이 탄생했을 것이다. 요약하면 IT의 역사를 알고자 <거의 모든 IT의 역사>를 읽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저자는 복잡한 IT의 역사를 저자 본인만의 간결하며 추상적인 설명 방식에 끼워맞추고자 노력했다. 다른 책의 설명 방식을 본뜬 것처럼 보이는 인물 위주의 서사와 제품 위주의 서사를 별로 두껍지 않은 책에 담으려고 하다 보니 제목과 달리 거의 모든 IT의 역사를 담는 데에 실패했고, 책의 완성도도 떨어졌다. 인물 위주로 IT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다면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서 다뤄진 인물들에 관한 평전이나 자서전을 추천한다. 대표적으로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를 권한다. 제품 위주로 IT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다면 제주도에 위치한 넥슨컴퓨터박물관의 방문을 권한다. 이 책에서 글자로만 받아들일 수 있었던 IT의 발전을 보고 만지며 체험할 수 있다. 한편 정지훈 저자가 참여한 알릴레오 북's 33회, 34회 유튜브 영상은 시청을 권한다. 고정 패널인 유시민 작가, 조수진 변호사가 독자 대신 질문과 비평을 던지며 <거의 모든 IT의 역사>을 읽으며 아쉬운 점을 희석했다는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거리이다. 참고문헌• 이한용,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채륜서•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레리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김영사• 김명진, <20세기 기술의 문화사>, 궁리•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민음사•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알릴레오 북's 33화, 34화https://youtu.be/tc7pyc3k1uI?si=3yF1qw-Kj4weALdzhttps://youtu.be/1danEba_4Bk?si=xJNBFbFquX-OgnC4
크리스퍼가 온다 진화를 지배하는 놀라운 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Doudna, Jennifer A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23.11.05 편 <크리스퍼와 특이점> 출연진 소개제니퍼 다우드나 생물학 박사, <크리스퍼가 온다> 저자레이 커즈와일 미래학자, <특이점이 온다> 저자김명진 교수, <20세기 기술의 문화사> 저자마이크 브라운 교수.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저자 ※ 모든 대사와 설정은 가상으로, 해당 저자의 실제 견해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레이 : 최근 기술 발전하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고 느낍니다. 예전에 막연하게만 예상했던 특이점이 조금씩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어요. 최근에 이슈가 크게 되는 챗gpt도 그렇고, 오늘 와주신 제니퍼 박사님의 유전자 가위 기술도 마찬가지고요. 제니퍼 : 사실 크리스퍼라는 기술을 제가 만들었긴 했지만, 제가 만들었다고 공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긴 해요. 상황이 살짝 꼬여 있어가지고… 마이크 : 상황이 꼬여 있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제니퍼 : 지금 기술 특허를 출원한 상태이기는 한데, 다른 사람이 제 거랑 매우 흡사한 기술로 특허 우선심사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현재 특허권 분쟁이 있는 상태예요. 어떤 일로 인해서 기술이 유출되었는지는 지금 알 길이 없는데, 좋은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습니다. 마이크 : 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발견했던 제나라는 행성을 스페인의 모 천문학자 그룹이 먼저 발표해버리는 바람에 제 발표가 취소되어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허블 같은 걸로 측정한 각종 천체에 대한 데이터를 저장해두는 db를 사용하는데, 거기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나가 등록되어 있던 모양이에요. 뭐 어차피 지금은 제나가 행성이 아닌 걸로 되는 바람에 별 의미는 없긴 합니다. 김명진 : 몇 년에 걸쳐서 해낸 연구가 도둑맞는 건 누구에게나 화날 만한 일이죠. 더군다나 그것이 크리스퍼처럼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칠 만한 랜드마크같은 기술이라면 더더욱이요. 마이크 : 기술을 처음으로 완성했을 때 어떠셨나요? 제니퍼 : 몇 년의 연구 끝에 징크 핑거 뉴클레이즈와 탈렌 단백질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기초해서 원하는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바이러스 DNA를 찾아 파괴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세균을 직접 만들었을 때의 기분은 생각보다 많이 묘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제 손으로 생물을 개조할 툴을 만들었고, 이걸 논문으로 발표해버리는 순간 생물학계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마이크 : 자신의 결정이 학계를 뒤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학자에게 부담되는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명왕성 퇴출 여부로 천문학회에 참석했을 때의 긴장감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네요. 이쯤 되니 크리스퍼라는 기술이 뭔지가 궁금해집니다. 제니퍼 : 유전자 가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DNA에 있는 한 영역입니다. 종이를… 갖고와서 그려보면… 이렇게 세균 세포가 있으면 여기 안에 동그랗게 세균 염색체가 있죠. 여기 마름모랑 사각형이 교대로 이어지는 띠가 보이시죠? 여기가 크리스퍼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영역이 왜 중요한 영역이냐면, 세균 바이러스 게놈뿐만 아니라 어떤 게놈이든 제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A라는 기능을 해당 개체에게서 원한다면 그 기능을 수행하는 유전자 가위를 편집해서 개체의 DNA에 넣어주면 되는 거거든요. 사실상 생물의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수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거나 다름이 없게 되죠. 김명진 : 이름은 생소하지만 상당히 강력한 기술로 보입니다. 제가 찾아보니까 콩이나 옥수수같이 저희가 먹는 식물에 제초제 저항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에 크리스퍼가 쓰인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황롱빙이라는 병충해에서부터 오렌지 산업을 보호하려고 이 기술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고, 우리 한국에서도 캐번디시 바나나의 토양 곰팡이 저항성을 부여하려고 바나나 게놈 편집을 하기도 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네요. 사실 유전체 편집이라고 한다면 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는 탈렌 같은 기술도 있는데, 크리스퍼만의 좀 킬링 장점? 같은 게 있나요? 제니퍼 : 탈렌 같은 기술이랑 비교했을 때 크리스퍼 기술의 진짜 강점은 쓰기 쉽고 싸다는 겁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과학자든 크리스퍼로 유전자 편집을 할 수 있습니다. 전에 쓰였던 징크 핑거 뉴클레이즈나 탈렌 같은 편집 기술은 쓰기도 복잡하고 엄청 비쌌는데, 이게 그 금기를 깨버린 거죠. 플라스미드만 있으면 누구든 게놈을 편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거예요. 이전까지 비용이나 가능성 문제로 시도되지 않고 있던 이식용 장기 양산이나 멸종 생물의 복원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도 크리스퍼 덕분에 활력을 얻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한마디로 접근성이 엄청 좋아진 거예요. 레이 : 신기하네요. 그렇다면 크리스퍼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기술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모기로 인해 아프리카에서 기승을 부리는 말라리아나, 최근에 발생한 코로나도 근본적으로 그런 질병들에 대해 저항성이 있는 게놈을 편집해서 인간에게 삽입하면 백신 없이 디폴트로 질병 면역을 가진 인간이 탄생할 수 있게 되는 거고, 궁극적으로 지구상의 병원체 대부분에 대해 인간이 면역을 가질 수 있게 되니까요. 그것뿐이 아닙니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 후천성 지체장애를 비롯한 수많은 장애에 대해서도 크리스퍼만 있으면 근본적인 퇴치가 가능하다는 점이 이 기술의 가장 고무적인 부분입니다. 의학의 의학로 미뤄뒀던 문제들을 생물학 기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상당히 인상적이네요. 김명진 : 저 역시 크리스퍼가 대단한 기술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기술이 가져올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싶은 게, 잠시의 설명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은 꽤나 큰 위험성을 가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이 교수님 말대로 인간에게 크리스퍼 편집 기술이 적용되면 물론 전염병 퇴치나 장애 해결 등의 좋은 효과가 물론 있겠지요.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모든 기술에는 명과 암이 존재합니다. 증기기관 기술은 수많은 실업자와 노동인권 문제를, 원자력 기술은 체르노빌 사고와 핵무기 경쟁을, 우주 기술은 과도한 환경오염과 우주쓰레기 문제를 안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인간 자체를 편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부작용의 스케일이 다를 가능성이 큽니다. 마이크 : 저 중에서 우주 기술의 부작용은 천문학자인 저 역시 경험합니다. 물론 빅데이터 등의 발전으로 요즘은 허블 망원경 사진을 수십 개씩 돌려보지 않아도 궤도예측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스타링크 같은 인공위성이 수천 개씩 날아다니다 보니까 정상적인 관측을 하기가 많이 힘듭니다. 크리스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문제 해결이라는 효과를 가지고 오겠지만, 동시에 인간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적지 않은 왜곡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양 복제할 때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양 정도는 복제해도 큰 윤리적인 마찰이 가해지진 않았었는데, 이걸로 인간을 복제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잖아요. 제니퍼 : 저 역시 그런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인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었고, 그 덕에 이 책을 출판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만든 기술이라면 이 기술의 효과와 위험성, 그리고 바람직한 이용을 위한 방침? 비슷한 걸 제가 직접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장 소비자 입맛대로 게놈을 편집할 수 있으면 말에다가 뿔을 달아갖고 유니콘을 만들어버려도 할 말이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 나름의 원칙을 정하긴 했습니다. 레이 : 오 그게 뭔가요? 제니퍼 : 생식세포는 건들지 말자는 겁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발생에 있어서 생식세포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습니다. 근데 생식세포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배아가 태어나기조차 전에 배아의 성질을 정해버린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모든 변인을 선택할 능력이 없는 태아에게 인간이 임의로 설정한 변수를 집어넣는 것은 아직 많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서 저런 기준을 정했죠. 김명진 : 그런데 사실 체세포는 건드려도 되고, 생식세포는 가만히 놔둬야 한다는 기준이 살짝 임의적인 느낌은 나네요. 유전병 중에 X연쇄 중증 복합 면역부전증 같이 정말 유전자 치료로만 해결할 수 있는 병이 분명히 있거든요. 근데 딱 체세포로만 크리스퍼 편집을 제한해버리면 저런 병을 앓는 분들이 치료를 받을 길이 막혀버리는 문제가 생기죠. 그렇다고 체세포에 대해서는 완전히 허용하는 게 옳은 길인가를 생각해 봤을 때 상염색체의 가짓수만 봐도 그것도 꼭 완벽한 대비책인 것 같지는 않고요. 제니퍼 : 저도 제가 정한 기준이 상당히 자의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서, 일단 제 기술이 인간에게 미칠 영향이 엄밀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 기술의 인간에 대한 이용을 되도록이면 막고 싶은 입장이긴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 개체의 문제 해결에 사용이 되긴 하겠지만… 그래서 제가 그것에 대해서 좀 대중들과 많은 토론을 해 보고 싶어서 책을 낸 것이기도 해요. 크리스퍼의 사용을 언제쯤 허가할지, 어떻게 통제할지, 우리가 감수해야 하거나 또는 감수하지 않아도 될 영향력은 무엇인지, 생식세포 편집은 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들애봐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마이크 :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긴 합니다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것이 꼭 베스트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가 배우는 지식에 대한 참과 거짓이 갑자기 변하는 것에 대해 꽤 보수적이거든요. 명왕성이 행성이던 시절 명왕성을 계속해서 행성으로 놔둬야 한다는 의견도 꽤 많았습니다. 당시 학계에서 주류로 이루어지던 행성에 대한 엄밀한 분류를 정확하게 알고 있던 사람은 손에 꼽을 거예요. 이 일 이후로 대중들의 의견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관련자들의 주류 의견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긴 합니다. 제니퍼 : 맞아요, 대중들의 의견뿐만 아니라 학계의 의견도 물론 중요해요. 다만 저희가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하는 건, 기술의 발전이 과학자와 대중이 합의를 할 때까지 저희를 기다리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합의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이 기술이 인간이 자기 손으로 괴물을 창조하는 데에 사용되기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레이 : 세 분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특이점이 오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김명진 : 교수님 말씀대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니까요. 제니퍼 : 결론적으로 저도 한 개인으로서 결국 인간들의 결정에 대해 낙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합니다. 제가 아무리 소리를 내어봐야 세상은 주류의 의견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차피 앞을 보고 달리려는 운전자에게 어떻게든 옆을 보도록 경고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