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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책과 우연들] 김초엽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p.9)무엇보다 우리가 살며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전보다 더 흥미롭고 복잡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p.11) SF는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 어쩌면 유독 인간 바깥의 무언가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이 SF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27)1. 세계를 확장하기2. 읽기로부터 이어지는 쓰기의 여정3. 책이 있는 일상연구를 하며 읽어야 하는(?) 책들을 읽다보니, 아무리 주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더라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최근엔 연구와 관련되지 않은 책을 읽고 싶을 땐, 내가 좋아하고, 이미 알고 있는 작가들의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덜 머리가 지끈거리고 마음 편안한 느낌을 즐기기 위하여... 이 책은 SF작가로서 엄청난 속도로 작품을 내고 계신 김초엽 작가님의 에세이였다. 책을 읽고 쓰고 싶은 마음을 발견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담아낸 책이다. 논문을 쓸때 읽다보니 구구절절 공감하고, 뼈맞기도 하면서 즐겁게 읽었다.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만 공유하자면,자신의 첫 소설집을 두고 '석사논문 정도의 독창성'이라고 표현한 부분이었다. (p.55)사실 포스팅을 올리는 지금도 완전히 석사논문의 수정본을 제출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을땐 정말 한창 글을쓰는 중이었다. 그때 '석사논문 정도의 독창성'이라는 내용을 보고 정말 엄청 웃었다. 뼈맞은 것 같기도 하면서도 나도 어서 다른 많은 글을 써내서 내가 지금 고통받은 석사논문을 귀여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책들의 참고문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우리 각자의 앎이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도 오직 홀로만 탁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다행한 일인지를 생각한다.'라고 적으신 부분이 너무 좋았다. (p.115) 처음에 연구자가 되고 싶어 대학원의 길을 택했을 때는, 뭐든지 스스로 다 해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심란해졌다. 내가 읽는 논문들과 내가 보는 사람들은 이렇게나 대단한데, 내가 어떻게 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그런데 지금은 두렵기는 하지만 감사한 마음이 커졌다. 석사논문을 작성하면서 내가 기댄 수많은 연구자들의 연구와, 수 많은 사람들의 자료들. 그리고 나의 글을 읽어주고 생각을 다듬는데 큰 도움을 준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연구도 내가 함께 연구할 집단을 잘 만들고 유지하면서 서로의 지식을 나누고 배우고 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그리고 에세이다보니 작가님의 포스텍 시절이 담긴 부분을 찾아 읽는 재미가 있었다. 나도 들은 수업이 등장하거나, 좋아하는 책방이름이 나올때가 그랬다. 이 책은 또 작가님이 생각하는 SF와 과학에 대한 생각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인간 너머로 시선을 옮길 때 과학은 참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특정한 결(?)의 책만을 주로 읽던 터라, 전혀 새로운 책이 주는 세상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괜히 찔렸다. 그래. 동네 책방도 좋아하는데 한걸음만 옮기면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도 읽어봐야지!! 그렇지만 김초엽 작가님의 책도 계속계속 읽을거다. 건강을 챙기시며 지금처럼 다작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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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책과 우연들] 김초엽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p.9)무엇보다 우리가 살며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전보다 더 흥미롭고 복잡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p.11) SF는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 어쩌면 유독 인간 바깥의 무언가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이 SF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27)1. 세계를 확장하기2. 읽기로부터 이어지는 쓰기의 여정3. 책이 있는 일상연구를 하며 읽어야 하는(?) 책들을 읽다보니, 아무리 주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더라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최근엔 연구와 관련되지 않은 책을 읽고 싶을 땐, 내가 좋아하고, 이미 알고 있는 작가들의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덜 머리가 지끈거리고 마음 편안한 느낌을 즐기기 위하여... 이 책은 SF작가로서 엄청난 속도로 작품을 내고 계신 김초엽 작가님의 에세이였다. 책을 읽고 쓰고 싶은 마음을 발견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담아낸 책이다. 논문을 쓸때 읽다보니 구구절절 공감하고, 뼈맞기도 하면서 즐겁게 읽었다.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만 공유하자면,자신의 첫 소설집을 두고 '석사논문 정도의 독창성'이라고 표현한 부분이었다. (p.55)사실 포스팅을 올리는 지금도 완전히 석사논문의 수정본을 제출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을땐 정말 한창 글을쓰는 중이었다. 그때 '석사논문 정도의 독창성'이라는 내용을 보고 정말 엄청 웃었다. 뼈맞은 것 같기도 하면서도 나도 어서 다른 많은 글을 써내서 내가 지금 고통받은 석사논문을 귀여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책들의 참고문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우리 각자의 앎이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도 오직 홀로만 탁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다행한 일인지를 생각한다.'라고 적으신 부분이 너무 좋았다. (p.115) 처음에 연구자가 되고 싶어 대학원의 길을 택했을 때는, 뭐든지 스스로 다 해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심란해졌다. 내가 읽는 논문들과 내가 보는 사람들은 이렇게나 대단한데, 내가 어떻게 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그런데 지금은 두렵기는 하지만 감사한 마음이 커졌다. 석사논문을 작성하면서 내가 기댄 수많은 연구자들의 연구와, 수 많은 사람들의 자료들. 그리고 나의 글을 읽어주고 생각을 다듬는데 큰 도움을 준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연구도 내가 함께 연구할 집단을 잘 만들고 유지하면서 서로의 지식을 나누고 배우고 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그리고 에세이다보니 작가님의 포스텍 시절이 담긴 부분을 찾아 읽는 재미가 있었다. 나도 들은 수업이 등장하거나, 좋아하는 책방이름이 나올때가 그랬다. 이 책은 또 작가님이 생각하는 SF와 과학에 대한 생각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인간 너머로 시선을 옮길 때 과학은 참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특정한 결(?)의 책만을 주로 읽던 터라, 전혀 새로운 책이 주는 세상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괜히 찔렸다. 그래. 동네 책방도 좋아하는데 한걸음만 옮기면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도 읽어봐야지!! 그렇지만 김초엽 작가님의 책도 계속계속 읽을거다. 건강을 챙기시며 지금처럼 다작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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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농담 : 이슬아의 창작 동료 인터뷰
이슬아
늘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어쩜 그렇게 멋있는지, 가슴이 쿵쾅거릴만큼 멋지게 기타를 치는 사람을 봐도 그랬고, 비트에 맞춰 몸을 미끄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그랬고, 내 좁은 세상을 넓혀주는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도, 이 세상의 규범과는 다른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전부 전부 다 멋있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내가 멋지게 느끼는 사람들을 죄다 모아놓은 보물같았다. 이런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닮고 싶어하고, 나로 초점이 돌아오는 것도 웃기다. 책을 읽는 것도 책과 나의 실뜨기겠지. 내가 대학원생으로서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을까. 결국은 질문을 찾고 나름의 답을 하고, 나의 답을 의미있게 이해해줄 동료를 찾고, 피드백도 적절히 받고, 다시 다음으로 나아가고... 창작을 한다는 것은 뭐랄까 주변과 영향을 주고 받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고유한 질문과 대답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매력있다. 각각의 인터뷰가 너무 좋았지만, 그 중 하나만 꼽자면 김초희 감독님의 말 "글쓰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정신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창작을 하지 않으면 허무해질 수밖에 없어요." p.307 라는말이 좋았다. 그와 동시에 이런 말을 했을 때 그럼 경제적 자유를 얻을 만큼 부자가 되면 어떻게 될까? 하고 물을 사람이 떠오르고, 그럼 경제적 자유도 갖고 창작도 하면 너무 행복하겠다! 하고 대답할 나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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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농담 : 이슬아의 창작 동료 인터뷰
이슬아
대면으로 만나 ‘창작과 농담’책을 구성원들과 나누었고, 각자 책을 읽은 후 나눈 책에 대한 의견은 아래와 같습니다. [슬기]늘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어쩜 그렇게 멋있는지, 가슴이 쿵쾅거릴만큼 멋지게 기타를 치는 사람을 봐도 그랬고, 비트에 맞춰 몸을 미끄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그랬고, 내 좁은 세상을 넓혀주는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도, 이 세상의 규범과는 다른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전부 전부 다 멋있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내가 멋지게 느끼는 사람들을 죄다 모아놓은 보물같았다. 이런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닮고 싶어하고, 나로 초점이 돌아오는 것도 웃기다. 책을 읽는 것도 책과 나의 실뜨기겠지. 내가 대학원생으로서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을까. 결국은 질문을 찾고 나름의 답을 하고, 나의 답을 의미있게 이해해줄 동료를 찾고, 피드백도 적절히 받고, 다시 다음으로 나아가고... 창작을 한다는 것은 뭐랄까 주변과 영향을 주고 받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고유한 질문과 대답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매력있다. 각각의 인터뷰가 너무 좋았지만, 그 중 하나만 꼽자면 김초희 감독님의 말 "글쓰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정신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창작을 하지 않으면 허무해질 수밖에 없어요." p.307 라는말이 좋았다. 그와 동시에 이런 말을 했을 때 그럼 경제적 자유를 얻을 만큼 부자가 되면 어떻게 될까? 하고 물을 사람이 떠오르고, 그럼 경제적 자유도 갖고 창작도 하면 너무 행복하겠다! 하고 대답할 나를 상상해본다. [미연]올해 초 이 책을 읽었었다. 북클럽 도서로 선정되면서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지난 kamf에서 새소년 공연을 본 이후여서 그런지 인터뷰를 다시 읽는 동안 더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정부분 공유하는 경험이 생겼을 때, 처음 책을 읽었을 땐 관심 가지지 않았던 부분이 새롭게 보이며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인터뷰’라는 형식을 접한 건 초등학생 때 교과서였던 것 같다. 어느정도 정해진 질문 틀 안에서 이어지는 대화가 아닌 정보 전달의 목적의 글을 읽으며 인터뷰 글을 읽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최근의 읽어본 책을 통해 (인터뷰어/인터뷰이 사람 자체에 관심이 있어 찾아본 책) 인터뷰어의 커다란 질문에 질문을 잇는, 그리고 인터뷰이가 수동적으로 질문을 받는 사람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수 있게 되면서 관심있게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처음 누군가를 만났을 때, 책에서 본 인터뷰어처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는지를 관심있게 살펴보며 여러가지 말하는 방식도 배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슬아 작가의 ‘창작과 농담’은 처음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어서 관심이 갔던 책이었지만, 이제는 좀 더 그 안의 인터뷰이가 궁금해져서, 인터뷰 속의 사람들의 말하기 방식을 배우고 싶어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다시 찾아 읽게 되는 책이었던 것 같다. 상대방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리고 강말금님의 인터뷰를 읽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영화를 찾아봤는데, 책의 인터뷰 모습과 영화 속의 역할이 연결되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번쯤 꼭 보면 좋을 영화인 것 같다. [예은]어렸을 때부터 여러 창작물을 보며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걸 동경하면서도 또 좋아해왔다.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나온 창작물들을 보며 창작자들의 내면 세계가 어떻게 저렇게 추상되었을까를 짐작해보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이었다. “당신은 왜 그런 당신이 되었는지 어쩌다 그런 것을 만들게 되었는지” 이 책에서는 보다 직접적인 물음을 던져 창작자들의 세계에 무엇이 있었는지 엿보았다. 책에 실린 여러 창작자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보는 게 참 재밌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말과 글의 미묘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감정에 대해, 이야기에 대해서도. 그리고 다시 그들의 노래, 글 같은 창작물들을 보니 그 속에 어떤 감정들이 어떤 생각들이 숨겨져 있었는지가 함께 느껴지는 것 같아 재밌었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관점을 엿보고 결국 그들이 무엇을 농담하며 창작하였나를 작품을 통해 다시 살필 수 있게 해주는 게 이 책 ”창작과 농담”의 묘미였다. 그렇다보니 그런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결국 “당신은 누구인가”란 질문에 가장 제대로 대답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창작품 그 자체이지 않을까 하는. 그 순간순간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들어간 그 흔적 자체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내면을 제일 잘 설명해주는게 아닐까. 나를 정의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나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가며 스스로를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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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농담
이슬아 지음
대면으로 만나 ‘창작과 농담’ 책을 구성원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각자 책을 읽은 후 나눈 책에 대한 의견은 아래와 같습니다. [슬기]늘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어쩜 그렇게 멋있는지, 가슴이 쿵쾅거릴만큼 멋지게 기타를 치는 사람을 봐도 그랬고, 비트에 맞춰 몸을 미끄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그랬고, 내 좁은 세상을 넓혀주는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도, 이 세상의 규범과는 다른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전부 전부 다 멋있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내가 멋지게 느끼는 사람들을 죄다 모아놓은 보물같았다. 이런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닮고 싶어하고, 나로 초점이 돌아오는 것도 웃기다. 책을 읽는 것도 책과 나의 실뜨기겠지. 내가 대학원생으로서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을까. 결국은 질문을 찾고 나름의 답을 하고, 나의 답을 의미있게 이해해줄 동료를 찾고, 피드백도 적절히 받고, 다시 다음으로 나아가고... 창작을 한다는 것은 뭐랄까 주변과 영향을 주고 받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고유한 질문과 대답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매력있다. 각각의 인터뷰가 너무 좋았지만, 그 중 하나만 꼽자면 김초희 감독님의 말 "글쓰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정신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창작을 하지 않으면 허무해질 수밖에 없어요." p.307 라는말이 좋았다. 그와 동시에 이런 말을 했을 때 그럼 경제적 자유를 얻을 만큼 부자가 되면 어떻게 될까? 하고 물을 사람이 떠오르고, 그럼 경제적 자유도 갖고 창작도 하면 너무 행복하겠다! 하고 대답할 나를 상상해본다. [미연]올해 초 이 책을 읽었었다. 북클럽 도서로 선정되면서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지난 kamf에서 새소년 공연을 본 이후여서 그런지 인터뷰를 다시 읽는 동안 더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정부분 공유하는 경험이 생겼을 때, 처음 책을 읽었을 땐 관심 가지지 않았던 부분이 새롭게 보이며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인터뷰’라는 형식을 접한 건 초등학생 때 교과서였던 것 같다. 어느정도 정해진 질문 틀 안에서 이어지는 대화가 아닌 정보 전달의 목적의 글을 읽으며 인터뷰 글을 읽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최근의 읽어본 책을 통해 (인터뷰어/인터뷰이 사람 자체에 관심이 있어 찾아본 책) 인터뷰어의 커다란 질문에 질문을 잇는, 그리고 인터뷰이가 수동적으로 질문을 받는 사람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수 있게 되면서 관심있게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처음 누군가를 만났을 때, 책에서 본 인터뷰어처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는지를 관심있게 살펴보며 여러가지 말하는 방식도 배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슬아 작가의 ‘창작과 농담’은 처음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어서 관심이 갔던 책이었지만, 이제는 좀 더 그 안의 인터뷰이가 궁금해져서, 인터뷰 속의 사람들의 말하기 방식을 배우고 싶어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다시 찾아 읽게 되는 책이었던 것 같다. 상대방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리고 강말금님의 인터뷰를 읽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영화를 찾아봤는데, 책의 인터뷰 모습과 영화 속의 역할이 연결되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번쯤 꼭 보면 좋을 영화인 것 같다. [예은]어렸을 때부터 여러 창작물을 보며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걸 동경하면서도 또 좋아해왔다.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나온 창작물들을 보며 창작자들의 내면 세계가 어떻게 저렇게 추상되었을까를 짐작해보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이었다. “당신은 왜 그런 당신이 되었는지 어쩌다 그런 것을 만들게 되었는지” 이 책에서는 보다 직접적인 물음을 던져 창작자들의 세계에 무엇이 있었는지 엿보았다. 책에 실린 여러 창작자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보는 게 참 재밌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말과 글의 미묘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감정에 대해, 이야기에 대해서도. 그리고 다시 그들의 노래, 글 같은 창작물들을 보니 그 속에 어떤 감정들이 어떤 생각들이 숨겨져 있었는지가 함께 느껴지는 것 같아 재밌었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관점을 엿보고 결국 그들이 무엇을 농담하며 창작하였나를 작품을 통해 다시 살필 수 있게 해주는 게 이 책 ”창작과 농담”의 묘미였다. 그렇다보니 그런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결국 “당신은 누구인가”란 질문에 가장 제대로 대답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창작품 그 자체이지 않을까 하는. 그 순간순간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들어간 그 흔적 자체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내면을 제일 잘 설명해주는게 아닐까. 나를 정의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나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가며 스스로를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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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어느정도의 위험을 안고 굴러가는 현대사회에서, 이 위험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를 만들어낸 사회적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고심해볼 기회를 가지고자 하였습니다.해당 책을 읽은 후 나눈 소감은 다음과 같습니다.[슬기]세월호 참사에 대해 관심을 먼저 갖게 되었기 때문인지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어려웠었다. 정치적으로 천안함 사건은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이 어떤 목소리를 낼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교하고 공격하는데 자주 등장했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이 두 참사가 정말 닮아있고, 오히려 연대하여 피해자에 대한 논의를 확장해 나가야 하는 일임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이 그들의 것만이 아닌 것을 이해하고, 이를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정확하게 명명하는 일이 중요함을 다시금 느낀다. 장병들을 패잔병이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단호히 대응하고, 이 사건이 산업재해 사건이기도 하다고 명명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이 비유적이고 담론적으로 사회에 퍼지는 것은 특정 사건의 해결 주체와 방식을 결정할 때 크게 영향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에 대한 더 넓고 깊으며 연대하고 그룹지을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을 이해하면서도 각기 다른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겠다. 똑똑한 사람이 정치판에서 혐오를 생산해내는 일을 보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전략상의 허점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좋겠다.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으니까요. (p.151)이 연구 결과는 뛰어난 인지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오히려 확증편향에 더 능하고 정치적 양극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인지 능력이 자신의 진영이 지지하는 결론이 실은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열린 태도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기보다는,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활용하여 자신의 진영이 다툼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p.171)[미연]이전에 성폭력 생존자의 증언을 다룬 책을 읽으며 이들을 사회는 단순히 ‘피해자’라고 부를 것이 아닌 타인의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라는 위험한 상황에서 버텨나가고 있는 ‘생존자’ 라고 명명해야 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내 가족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닌 이상 우리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비극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때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생존자들의 곁에서 이 비극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세월호 참사와 천암함 사건 때 나는 어땠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세월호 참사는 고등학교 1학년때 나에게는 정말 큰 충격 그 자체였고,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보며 분노했고, 시위도 참석하고, 꿈속에서도 팽목항이 나올 정도로 공감하고 목소리를 보태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4월 16일이 되면 마음이 먹먹해 지며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변화시켰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내 행동의 한계는 여기 있었다. 내가 공감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었지만, 공감의 계기가 크지 않으면 적당한 무관심으로 사건을 이해하려는 의지를 가지지 않았다. 나에게 천안함 사건이 그랬었다. 그 당시 북한 침공 때문인지, 선체의 결함 때문인지 정치권에서 매우 시끄러웠고 모든 뉴스는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뒤에 순직한 장병들의 희생이 잠깐 비춰지고, 참사 속에서 살아남게 된 장병들은 그곳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생존 장병들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 속에서 군대의 폭력적인 문화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고, 사회가 부당하게 그들에게 지우려고 했던 책임에 분노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분노에만 멈출 것이 아니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사람이 있었을 때 무지에 의한 침묵이 아닌 잘못된 부분과 간과한 부분을 지적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김승섭 교수님은 이 책을 통해 트라우마를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 슬픔은 견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안해 주신다. 사회는 편의를 목적으로 생존자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갔다. 우리는 이에 맞서 타인에게, 나에게 사회적 지지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 때까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 지 끊임 없이 고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예은]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사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회적인 비극이 서로 어떻게 닮아 있는지, 더 나아가 비극 그 이후의 한국사회의 태도까지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책이었다. 개인의 비극을 방치하는 한국 사회가 타인의 비극까지 방치하는 사람들을 생산해내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좌절감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어본 적 없는 타인의 비극에 공감하고 연민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점에 희망을 느꼈다. 작가의 말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면 슬픔은 견뎌질 수 있다. 단순 연민과 공감을 넘어서서, 생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타인의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사회의 관점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단순 애도를 넘어서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결국 미래의 피해자들이 이길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길 소망해본다.“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삶을 앗아갈, 아직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또다른 참사의 과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피해자를 향한 연민을 넘어서야 하고, 슬픔과 분노를 소비하는 행위를 넘어서야 합니다.” (190p)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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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장편소설
김초엽
저희 북클럽은 첫 책으로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이라는 책을 골랐고, 코로나 19 확산이 심각해진 상황이라 책 전달 후 비대면으로 도서 리뷰를 진행하였습니다.[슬기] 처음 고른 이야기는 <지구 끝의 온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서로 다른 세대인, 서로의 삶의 세월이 전혀 다르게 흐를 것 같은 두사람의 삶이 교차하며 조금씩 드러나는 이야기들! 이런 측면에서 최근에 읽은 다른 책이 생각났는데, Laurel Thatcher Ulrich의 <A Midwife’s Tale: The Life of Martha Ballard, Based on Her Diary, 1785-1812>. 한국어 번역본은 <산파일기: 27년간 기록된 한 산파의 일기에서 탄생한 미시사의 걸작> 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역사학자인 로렐 대처 울리히가 200여년 전의 산파인 마서 밸러드의 일기장을 토대로 당시 산파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던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의 젠더에 따른 분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서술한 책이다. 모두가 따분하고 반복적인 여성의 일상이라고 여겼지만, 이 역사학자와 산파는 200년의 역사를 두고 텔레파시를 주고받은 것 같기도 하다.산파일기처럼 <지구 끝의 온실>도 두 사람의 삶이 교차한다. 아영이라는 인물은 어린시절 독특한 분위기의 할머니 엔지니어 이희수와의 추억으로 ‘더스트 생태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고, ‘모스바나’라는 식물을 실마리 삼아 아영과 이희수의 삶을 포함하는 이야기의 파편을 연결했다. 아영이 다양한 학문의 논문과 학회, ‘랑가노의 마녀들’인 나오미, 아마라 자매를 만나 이야기를 들은 것을 종합하고 현재의 담론과 비교하고 교차하며 서술해내는 방식은 뭐랄까, 훌륭한 역사학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읽다 보면 가슴이 두근거릴만큼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나는 소설 본문도 본문이지만, 이를 포괄하는 맨 마지막의 작가의 말이 좋았다.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참 살기 힘든 세상이다. 혹자는 단군이래 최초로 부모세대보다 못 살게 되는 세대이자, 일상적 평가를 체화한 세대로 현 세대를 평가하더라. 또, 여러 차이로 서로를 갈라 치기하는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다. 또, 지구 전체를 보아도 기후위기는 현실이니까. 우리는 재생산보다는 개인의 생존을 도모하게 되고, 공동체의 개선보다는 개인의 삶의 불확실성을 줄이기에 급급하다는 진단이 설득력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연/인간 이성/마음 등을 구획하려고 해도 이제 우리의 삶은 그 경계가 모호한 온실 같은, 사이보그 같은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순수한 무언가는 이상속에 존재할 뿐,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물들어 있고 어느정도 오염되어 있으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허공의 경계선에 대고 계속 그들과 우리를 가르며 혐오와 선동을 일삼는 것은 아닐 것 같다. 매끄러울 수 없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그런 참고 사랑해보려는 용기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이러한 모습은 레이첼과 지수의 미묘한 감정선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고, 결국 프림빌리지가 해체되고 모든 것이 파괴되었지만, 약속을 마음에 품고 각기 다른 지역에서 식물을 퍼트린 이들의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다. [미연] SF소설에 평소 크게 관심을 못가졌었는데,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며 구체적인 묘사에 한번 놀라고 여성 위주의 서사에 한번 더 놀랐던 것 같다. 기존의 SF라고 하면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여 가장 최신의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류를 구한다라는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편견을 깨주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여 더 기대가 되었던것 같다. 소설 속에서 인류는 더스트로 인해 멸망위기에 처하게 된다. 생존자들은 더스트로부터 안전한 돔을 구성해 프림빌리지를 이루어 살아가는데, 프림빌리지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결국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게되고 이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이때 사람들은 개인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식량만 싣고 떠나는 것이 아닌 다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기 위해 더스트로부터 인류를 보호할 수 있는 식물 모스나바를 싣고 헤어진다. 이들은 새롭게 정착한 곳에서 모스바나를 심어 새로운 프림빌리지를 만들어갔고,이런 희생과 노력을 바탕으로 다시 세계는 안정을 찾아가게 된다. 팬데믹을 겪은지 2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더스트로 인한 인류 멸망의 위기에서 벌어지는 소설속의 상황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코로나 19를 직면한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프림빌리지 내의 사람들처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 최선을 다하며 연대하는 사람들과 내성종 사냥꾼처럼 약자를 짓밟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 모두를 보아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이 상황을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공감을 바탕으로 한 평화적인 연대로 해결책을 강구해나가야 함을 매일 배우고 있다. 소설 속 프림빌리지 사람들이 더스트 종식을 위해 모스바나를 싣고 헤어져 잊지 않고 인류를 위해 모스바나를 심어왔던 것 처럼, 배척이 아닌 연대를 통해 희망을 이어나가야 함을 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예은]<지구 끝의 온실> 멸망 이후와 재건된 이후 어느 시점의 지구를 그려내는 이 소설에서, 작가가 우리에게 그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다른 세계에 대해 모든 것을 바로 묘사해주지 않고 아주 조금씩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정보를 주는 방식은 마치 내가 이 다른 세계의 베일을 하나씩 벗기듯, 탐사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특히 초장에서 그런 서술 방식덕에 소설에 등장하는 ‘더스트’와 덩굴식물 ‘모스바나’가 서서히 퍼져 나가며 지구를 덮듯, 나 역시 이 다른 세계를 서서히 그려낼 수 있었다.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보이는 의미심장한 이미지들이 좋았다. 사람들이 복원된 산딸기를 먹으며 ‘상상 속에 남겨둘 때가 좋았지. 그냥 받아들여. 이게 원래 산딸기의 맛이야. 산딸기의 본질인 거야.’ 하는 말이 폐허가 된 지구 위에서 각자의 이상과 희망을 찾아 떠나고 모였지만, 결국 영원한 것과 완벽한 이상은 없음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을 때, 또 프림빌리지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저 덮여 있는 즉 ‘마치 숲을 되살렸다는 착각이 일게’된 상황이 겉으론 울창하고 푸른 모스바나 아래 여전히 썩은 고목들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과 겹쳤을 때.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경계와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구 끝의 온실 속 세상에는 돔들과 프림빌리지, 온실 등 많은 경계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결국 작가가 온실의 모순성에 대해 이야기했듯, 자연으로부터 인위적으로 조립되어 다시 인간에게 적응해 자연이 된 ‘모스나바’ 처럼, 경계처럼 보이던 것들은 모호해져갔다. 이런 모호해진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하는 이곳 지구’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러나 프림빌리지 사람들이 이상과 다른 현실의 경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였고,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마침내 그 결계를 넘어 지구를 덮었을 때를 기억한다. 그 마음들이 마치 더스트처럼 덩굴식물 모스나바처럼 서서히 퍼져나가 결국 세계를 재건시키는 것을 보고, 소설을 넘어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음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됐다. 감사합니다 :)